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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송병준(1887~1925), 그는 누구인가
홍미진 기자 | 승인 2004.03.15 00:00

"가쓰라: 한국을 병합한다고 하면 웬만큼 돈이 필요할 터인데 얼마쯤 있으면 되겠느냐? 송병준: 1억엔 내야 한다. 그러면 내가 책임지고 병합을 무난히 실행시켜 보겠다" -釋尾東邦, 『朝鮮倂合史』, 661면

1857년 8월 20일 함경남도 장진에서 태어난 송병준은 매국노 이완용에 뒤지지 않는 친일행적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병준은 뛰어난 처세술과 친일활동으로, 이완용과 함께 조선에 친일 세력을 만드는 주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완용은 관변에, 송병준은 민간인들 사이에 친일파를 만들고 친일 여론화 작업을 벌이는 것이었다.

러일전쟁 이후, 송병준은 기쿠조(大谷喜久藏) 병참감(육군소장)의 통역 신분으로 귀국해 정계 및 종교계 요인들을 친일파로 회유하는 한편, 국내 정세·동향을 일본 당국에 비밀리에 보고했다. 그리고 ‘일진회’라는 친일매국단체를 만들기도 했다.

1907년 이준 열사의 헤이그밀사사건이 터지자, 송병준은 고종에게 “일본에 건너가 메이지 천황에게 사죄하든가, 통감 이토에게 무릎을 꿇어 사죄해야 하는데, 이토에게 사죄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만일 그럴 경우에는 폐하를 죽이고 자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 일이 있은 후 고종은 왕위를 순종에게 양위하고 영친왕을 일본에 인질로 보냈다.

또한 송병준은 조선과 일본을 즉각 병합하자고 주장한 수상 가쓰라와 육군대신 데라우치 등 죠슈 군벌 계통의 지시에 따라 병합을 추진했다.

한편, 일본 당국은 송병준에게 일진회 명의로 ‘합방청원서’(일진회가 제출한 합방청원서는 이용구가 작성한 것이 아니라 일본에서 다케다가 스기야마의 지시로 작성한 것이다)를 제출하도록 지령을 내려 병합의 분위기를 조장했고, 결국 1910년 8월 29일 조선을 강점했다.

그 공로로 송병준은 일본 천황의 친척에게만 주는 ‘자작’이라는 작위와 은사금 10만 원(현재 약 10억 원), 홋카이도의 광대한 목장을 하사받았으며, 1920년에는 ‘백작’으로 승급했다. 그는 1925년 뇌일혈로 사망했다. 자료제공: 민족문제연구소

홍미진 기자  h-logal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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