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2일 국회는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헌법에 따라 즉시 대통령의 권한행사가 정지되었고 국무총리의 권한대행 체제가 그 공백을 힘겹게 메꾸어 나가고 있다. 탄핵소추권은 이 나라의 기본법이자 최고법인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국회 고유의 권한이다. 그러나, 국회의 탄핵소추권 행사가 절차적인 면에서나 실체적인 면에서 하자가 있다면, 그것은 ‘탄핵소추권의 남용’에 해당하는 것이고, ‘탄핵소추권의 남용’은 국회에 탄핵소추권을 부여한 헌법제정권력자, 즉,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이번의 국회 탄핵소추는 우선, 절차상으로 문제가 많다. 평일 본회의 개의시간이 오후 2시가 아닐 때 국회의장이 각 교섭단체 대표위원과 이를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국회법 제72조를 위반했다. 또한, 본회의 안건심의절차로서 안건 제안자의 제안취지 설명을 듣고 질의·토론을 거쳐 표결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국회법 제93조를 위반했다. 의장석 점거를 위한 민망한 몸싸움이 있었을 뿐이고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으로 야당의원들이 배제된 가운데 쫓기듯 서둘러 진행된 표결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국회는 “국회의 관행을 모르는 처사”라며 일축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어떤 국회 내 관행이 국회법 위에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국회법이라는 것도 국회의원들 자신이 만든 법이 아니던가.

실체적인 면, 즉, 헌법이 정한 탄핵사유에 해당하는가 하는 면에서도 국회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국회는 탄핵소추시 공직선거및선거부정방지법 제9조의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규정 위반, 측근 비리, 경제 파탄의 세 가지를 탄핵사유로 내세웠다. 원래 탄핵제도라는 것은 일반사법절차에 의해서는 소추가 곤란한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그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생겨난 제도이다. 정치적 책임을 묻기 위한 제도가 아니다.

이런 취지에서 우리 헌법 제65조 1항도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직 공무원들이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로 탄핵사유를 한정하고 있다. ‘측근 비리’는 측근들의 뇌물죄 규정 위반 등에 대통령이 공범으로 가담했다는 명백한 증거제시가 없는 한 어설픈 정치공세에 불과하며, ‘실정 등으로 인한 경제파탄’도 구체적인 법규정 위반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정치적 책임사유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선거법 제9조 뿐이다.

우선, 국회측에 의해 선거법 제9조를 위반했다고 주장되고 있는 대통령의 여당지지 발언이 “직무집행에 있어서”라는 탄핵요건을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대통령이 먼저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지지정당에 대한 기자들의 집요하고 끈질긴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것이 과연 ‘직무집행행위’인가. 대통령도 최고위직 공무원이기 이전에 엄연히 한 명의 정치인이다. 이것은 ‘직무집행행위’의 하나라기 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대통령이 다소 비공식적인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보아야 한다.

한발 양보하여 직무집행행위였다고 가정하자. 학계에는 국회가 주장하는 선거법 제9조에서 선거중립의무를 부담하는 “공무원”의 범위에 대통령과 같은 ‘정무직 공무원’은 제외된다고 보는 유력한 학설이 존재한다. 정무직 공무원은 공무원이기 이전에 태생적으로 정치인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정치활동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선거’에 완벽하게 관련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하나의 넌센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양보하여, 대통령과 같은 정무직 공무원도 제9조의 공무원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따른다고 치자. 대통령과 같은 고위직 공무원을 탄핵하기 위한 직무집행상의 위법행위는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 국민들이 5년의 임기를 보장해주며 직접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탄핵결정으로 임기 전에 물어나게 되며 대통령직의 공석으로 인해 국정 공백과 그에 따른 엄청난 국정 혼란이 수반될 수 있는 것이 탄핵제도이다.

대통령을 직접 뽑은 국민들의 의사에 반해서라도, 국정 공백과 국정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꼭 탄핵을 해야할 정도로 ‘중대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만 탄핵을 할 수 있다는 준엄한 경고가 탄핵에 관한 우리 헌법 제65조에 암시되어 있다고 필자는 믿는다. 대통령이 공무수행 중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고 해서 직무집행상의 위법행위임을 이유로 탄핵을 할 수야 없지 않은가. 도로교통법과 선거법은 차원이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지금 문제되는 선거법 제9조도 아무런 처벌조항 없이 ‘공무원의 선거중립’이라는 추상적 원칙을 선언해 놓은 훈시규정에 불과하다. 훈시규정 위반이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할만큼 ‘중대한’ 위법행위인가.

무엇보다도 이번의 국회 탄핵소추권 행사는 국민들의 지지와 합의를 끌어냄이 없이 정치인들에 의해 ‘총선 승리’라는 그들만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남용된 측면이 짙다고 믿는다. 지금이라도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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