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영 예술디자인대학 커뮤니케이션디자인학과 초빙교수

서양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책의 형태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등장한다. 함부라비 왕은 돌기둥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같은 평등의 가치를 알리는 법전을 기록했고, 아시리아인들은 점토판에 쐐기문자를 기록했다. 기원전 2,600년경 이집트인들이 나일 강둑에 자라는 갈대를 잘라서 연결하여 붙인 파피루스에 그들의 역사, 문학, 음악, 그리고 각종 문서들을 목탄과 물로 만든 잉크로 기록했다. 하지만 재료의 지속적인 공급이 어려워지며 파피루스는 양피지로 대체됐다. 양이나 송아지의 가죽은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동물성 재료로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었고 붓으로 그리기도 쉬웠다. 이렇게 새로운 재료가 등장하며 책의 형태는 두루마기와 접는 형태의 코덱스가 된다. 로마인들은 1세기 초부터 접이식 판에 정보를 기록했는데, 나무로 만든 패널 두 개의 끝에 가죽이나 끈으로 연결하면 접었다 펼 수 있는 형태의 노트였다. 안쪽에는 왁스칠을 해 그 위에 글을 쓸 수 있도록 날카로운 도구를 사용했다. 중세까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는 사용과 보관의 어려움으로 점차 낱장의 묶음 코덱스가 됐다. 또 목판을 가죽으로 마감해 책의 앞뒤를 묶어 만드는 장정본, 즉 하드커버라 불리우는 오늘날 서양의 책 형태가 탄생하게 됐다.

 

중국인들은 서양에서 파피루스와 양피지에 글을 쓰고 있을 때 이미 종이를 사용하고 있었다. 역사가들은 중국인들의 종이 제작시기를 기원전 140~86년 경으로 보고 있다. 종이는 이슬람인에 의해 서양에 전달됐다. 8세기경 중국의 제지업자가 실크로드에서 아랍군의 포로로 잡히게 되며 종이는 이슬람 문화에 전해졌다고 한다. 이슬람의 옴미아드 왕조는 제국을 이루며 동서양의 문화교류를 이끌었고, 이들이 서구에 전달했던 기술 중 하나가 중국의 제지술이었다. 아바스 왕조가 일어났던 바그다드에는 지혜의 집 바이트 알 히크마가 도서관과 천문학 관측소를 갖추고 있었고, 고대 그리스 시대의 두루마리를 소장해 서적 제작과 번역 등 학문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때 책을 옮겨 쓰거나 기록을 담당하는 필경사들이 종이를 사용하게 되며 책의 생산은 더욱 빨라졌고 구입하기도 쉬워졌다. 12세기는 스페인, 13세기에는 이탈리아와 독일에 제지공장이 생겼다.

 

종이와 함께 책을 만드는 기술은 인쇄술이다. 중세의 채식필사본에서 필사경들이 썼던 붓글씨체는 정형화된다. 이것을 영국에서는 블랙레터, 독일에서는 택스투라, 고딕서체라 불렀다. 이 글자꼴은 전체적으로 각이 진 형태였다. 목판본인 자이로그래픽북은 양각과 음각 형태로 문자판을 제작했다. 르네상스시기 활자를 이용한 대량 인쇄술로 새로운 출판 산업이 열리게 된다. 1999년 [타임]지는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를 지난 천 년간 가장 중요한 발명품으로 발표했는데, 인쇄기술은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을 촉진했던 사건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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