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빈 디자인부장

 

자존감이란,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뜻한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남들과 갈등을 겪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감에 빠졌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필자 또한 일이 뜻대로 잘되지 않을 땐 다른 일도 하기 싫어질 만큼 움츠러든다. 그래서 앞선 계획이 잘 이뤄지지 않았을 때, 좌절감에 휩싸여 남아있는 일들을 미루다 보니 나중에 어마어마한 양의 할 일이 쌓여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다 보면 '나만 이런 걸까, 남들은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며 남들과 비교하며 자존감을 깎아내리곤 했다.

서툴고 분주했던 한 학년의 생활을 마치고, 방학 동안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며 우연히 장영희 교수의 저서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게 됐다. 저자는 서강대학교 영미 어문과 교수로,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했다. 이렇게 성공한 사람은 흔히 떠오르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높은 자리에 올라왔겠지 생각하고 별 흥미 없이 책을 읽어나갔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장영희 교수는 한 사람의 인생에 담기에 벅찰 수많은 고난을 극복해왔고, 이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부끄럼 없이 담았다. 그분의 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루시 할머니와의 인연이다.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는 바람에 7층에 살았던 교수는 한동안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그녀에겐 계단 한 칸, 한 칸이 고난이었지만 계단을 천천히 오르며 4층 현관 앞에 나와 앉아 계신 루시 할머니를 만나게 되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됐다. 교수는 계단을 올라갈 때마다 할머니의 현관에 들르며 담소를 나눴다. 루시 할머니로부터 얻은 많은 조언은 그녀에게 큰 활력소와 위로가 됐다.

 

 '운명의 장난'은 예기치 않았던 어떤 일로 인해 우리의 삶의 행로가 바뀔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필자는 새 학년을 힘차게 시작하자는 목표와 함께 한 학기 계획을 알차게 세웠다. 하지만 바이러스 유행으로 인한 개강 연기,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집 안에만 있어야 하는 신세로 인해 할머니와 집에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게 됐다. 할머니와 함께 지내면서 인생 이야기를 듣고, 경험을 통한 삶의 지혜를 배우며 할머니와의 정이 깊어졌다. 장영희 교수와 루시 할머니가 운명의 계단에서 만난 것처럼 필자와 할머니도 서로를 의지하고 알아갈 시간을 부여받은 것이다. 루시 할머니는 '운명의 장난'은 항상 양면적이고, 늘 지그재그로 간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지그재그'란, 좋지 않은 일을 맞닥뜨렸을 때, '나쁜 건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좋은 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뜻이다. 필자는 그동안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좌절감에 빠져 늘 자신을 탓하며 깊게 떨어지는 직선을 그렸지만, 이 책을 읽고 좌절이란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과 지혜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앞으로는 어려움에 마주한 순간이 오더라도 인생의 지그재그를 떠올리며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며, 살아갈 기적을 만들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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