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대표 작가의 한 사람인 손창섭의 소설 「잉여인간」에는 채익준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서만기의 두 친구 중 하나인 채익준은 비분강개형이다. 그는 간호사보다 일찍 ‘만기치과의원’에 출근(?)해 두 종류의 신문을 한 시간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고 엄격한 비판을 가할 것을 잊지 않는다. 어느날 그는 외국제 포장갑을 밀수입해 와 그 안에 유해한 약품을 넣고 수천만환의 부당이득을 올리는 제약회사를 두고 ‘이따위 악질 도배’들에 대해 “대번에 모가질 비틀어 버리거나 즉각 총살해 버려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문다. 그러면서 “나라야 망하든 말든 동포들이야 가짜 약을 사쓰구 죽든 말든, 내 배때기만 불리면 그만이라구 생각하는 그딴 놈들은 살인 강도 이상의 악질범이오”, “이완용과 마찬가지 역적이오!”라고 선언한다.

그렇게 자기 배만 불리고 남에 대해서는 손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 실망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70년대 초 홀연히 한국을 떠나 아내의 고향 일본으로 가버렸다. 공동체의 이익을 돌보기보다 자기 자신의 이익을 더 중시했던 많은 사람들 때문에 더 이상 그들과 더불어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디 손창섭 한 사람 뿐이었겠는가. 돈을 써야 관청일이 빠르고 돈을 써야 감옥에서 풀려나오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슬로건이 한 시대를 풍미했고 고무신으로 막걸리로 표를 구걸해 무수한 정치인이 탄생했다. 그러니 이 사회에 환멸을 느끼지 않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니겠는가.

민족의 선각자로 이광수는 3.1 독립 선언 이전에 이미 동경에서 2.8독립선언서를 썼다. 1917년 장편 『무정』을 써서 한국 사회에 계몽의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던 그는 육당 최남선, 벽초 홍명희와 더불어 조선의 3대 천재 문인으로 불렸다. 민족을 위해 계몽운동에 앞장섰던 그는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가서 독립운동을 했고 독립신문을 발간하는 일도 맡았다. 그러던 그가 1922년 <개벽>에 ‘민족개조론’을 써 한국인의 민족성 개조에 앞장서면서 서서히 친일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한국인의 민족성이 A, B, C, D, E…가 있다면 그것을 A′, B′, C′, D′, E′…로 바꿔야 할 텐데 그 민족성이 하루아침에 그리 쉽게 바꿔지겠는가. 거기에 절망한 그는 한국인은 개화된 선진 일본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왜곡된 계몽주의자로 변질되어 버렸던 것이다.

독립운동의 후손들은 빈곤을 면치 못한다는 자괴감이 지배하던 나라, 횡령이나 배임을 해도 자기 배만 불리면 된다는 후진 문화의 나라, 법보다 주먹이 세다는 걸 자랑으로 알던 나라,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나라… 그런 나라가 있었다. 이젠 다 옛말이 되었다.

금번 코로나 사태를 보면서 우리 국민 대다수는 대한민국을 대단히 자랑스런 나라로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한국 국민이라 다행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64%나 되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긍정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61%였다. 또 우리나라를 선진국이라 느끼는 비율은 64%에 달했다. 묵묵히 참아내며 타인들을 배려해왔던 성숙한 시민정신의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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