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교도소를 둘러싼 사적 제재 논란 톺아보기

 인기 웹툰 <비질란테>의 주인공은 저지른 범죄에 비해 낮은 처벌을 받은 범죄자를 찾아가 폭력을 행사해 직접 처단하고 나선다. 주인공은 남들 눈에는 엘리트 경찰대 학생이지만 밤이 되면 법망을 교묘히 피해간 범죄자들을 찾아다닌다. 국가가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범죄자를 직접 벌하고 나서는 <비질란테>의 이야기가 온라인상에서 ‘디지털 교도소’로 현실화됐다.

 

인터넷 안에 또 다른 감옥, ‘디지털 교도소’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소개/ 출처&#8231;KBS뉴스

 ‘디지털 교도소’는 악성 범죄자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웹사이트로, 제보를 받아 범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는 사이트 소개란에서 “저희는 대한민국의 악성 범죄자에 대한 관대한 처벌에 한계를 느끼고, 이들의 신상정보를 직접 공개해 사회적인 심판을 받게 하려 합니다”라며 “범죄자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처벌, 즉 신상 공개를 통해 피해자들을 위로하려 합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당 웹사이트가 해외 서버에서 강력히 암호화돼 운영되고 있어, 대한민국의 사이버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디지털 교도소는 인스타그램 등의 제보창구를 통해 제보를 받은 뒤, 운영진의 검증을 통해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한다. 사이트에는 범죄자의 사진, 이름과 더불어 혐의, 주소, 직업(소속), 전화번호 등의 신상 정보가 공개돼 있으며 신상 공개 기간은 30년이다.

 디지털 교도소는 그동안 성범죄자와 강력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에 분노했던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었지만, ‘사적 제재’로 인한 많은 문제점을 양산하기도 했다. 동명이인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사실 확인을 충분히 하지 않고 신상을 게시하는 등의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지난 9월에는 지인 능욕을 이유로 신상이 공개돼 억울함을 호소하던 한 대학생과의 진실 공방 도중 대학생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디지털 교도소의 공익성, 그리고 사적 제재의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이트 전체 ‘접속 차단’ 결정

 지난달 1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소위원회 제67차 회의에서 ‘디지털 교도소’ 접속 차단 여부를 긴급 안건으로 상정해 심의했지만, 전체 접속 차단은 ‘해당 없음’으로 의결했다. 5명 중 3명의 소위원이 개별 URL이 아닌 사이트 접속 전체를 차단하기에는 과잉 규제의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24일에 열린 제70차 통신심의소위원회 회의에서는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 전체에 ‘접속 차단’ 결정을 내렸다. 방통심의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지만, 현행 사법체계를 부정‧악용하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디지털 교도소에 각종 신상 정보를 게시함으로 인해 이중 처벌이 되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무고한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접속 차단’ 결정 이유를 밝혔다. 또한 28일, 방통심의위는 26일에 2기 운영진에 의해 도메인이 변경된 디지털 교도소 사이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접속 차단’ 결정을 내렸다.

 두 번의 접속 차단 조치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교도소는 29일 다시 도메인 주소를 변경해 사이트를 재오픈 한 상태다.

그래프&#8231;어윤지 기자

 

‘왜 국가가 개인의 복수를 대신하는가?’

 운영자가 사이트 소개에서 언급하듯이 ‘디지털 교도소’는 사법부의 낮은 양형기준에 스스로 범죄자를 처벌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된다. 디지털 교도소와 같이 국가가 아닌 집단이 처벌의 목적으로 개인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로 ‘배드파더스’가 있다.

 ‘배드파더스(Bad fathers)’는 미혼모와 이혼한 싱글맘에게 자녀의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아빠의 신상을 공개해 양육비 지급에 대한 압박을 주는 사이트다. 배드파더스는 사이트 소개에서 “무책임한 아빠들에게 미혼모와 이혼한 싱글맘이 양육비를 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는 있지만, 고의로 양육비를 주지 않으려는 나쁜 아빠들에게, 법으로 강력한 제재가 불가능하다”라며 사이트를 운영하게 된 배경을 소개한다. 배드파더스의 운영자는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으나 지난 1월, 1심에서 공익성을 인정받아 무죄 선고를 받았다.

 배드파더스나 디지털 교도소 등 사적 제재를 하는 사이트는 ‘사법체계에 대한 불만’ 그리고 ‘공익’을 표방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김대근 연구위원은 “디지털 교도소의 경우, 판사들의 신상이 공개되거나 신상이 공개된 이를 조롱하는 등의 행보를 보아 전체적으로 공익성에 기반하고 있는지 신중한 판단이 든다”고 우려했다.

 디지털 교도소의 범죄자 신상 공개의 판단 기준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된다. ‘디지털 교도소’는 지난 7월 30일, 밀양 여중생 집단성폭행 사건의 공범이라며 격투기 선수 출신 A씨의 신상정보를 공개했지만, 혐의가 없는 동명이인인 것으로 밝혀져 사과한 바가 있었다. 또한 성착취 동영상 구매를 시도했다며 디지털 교도소에 신상정보가 공개된 한 대학교수가 경찰 수사 결과, 결백한 것으로 드러난 일도 있었다.

 김 연구위원은 사적 제재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우리는 왜 국가가 개인의 복수를 대신하는가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사적 제재가 행해질 경우)통상 복수는 과도할 수밖에 없고, 순환되기 마련”이라며 “더 중요한 문제는 개인이 사적 제재를 함에 있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가, 또한 개인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라고 꼬집었다.

 

'웰컴투비디오(W2V)'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이 불허되자 이를 고발하는 광고가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걸렸다./ 출처&#8231;KEDOOUT

 사적 제재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교도소’가 온라인상에서 ‘신상 공개’를 행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고민해볼 만하다. 성 착취 동영상이 대규모로 유통된 ‘n번방 사건’과 ‘웰컴 투비디오 사건’ 등의 성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며 꾸준히 제기됐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비교적 낮은 양형기준이 국민적인 공분을 샀기 때문이다. 실제로 디지털 교도소가 수면으로 올라오게 된 계기도 재판부가 세계적인 성착취 동영상 사이트인 ‘웰컴투비디오(W2V)’의 운영자 손정우의 미국 송환을 불허하자 그의 신상이 디지털 교도소에 공개되면서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우리나라보다 아동 성 착취물 제작에 대한 양형기준이 높은 국가다. 손 씨가 미국으로 송환될 경우, 우리나라에서 보다 더 높은 형량을 선고받을 것이라 예견됐다.

 김대근 연구위원은 “사적 제재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지만, 관성적으로 이런 자경활동이 사람들의 관심이 무엇이고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여론을 반영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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