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예년과 달라진 점을 꼽으라면 이구동성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증후군(코로나19)이 불러온 삶의 변화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올해 1월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사람들은 방역을 일상의 중대 변수로 여기며 살게 됐다. 매일 날씨를 체크하듯 조석으로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주시하면서 행동반경을 정한다. 안정성 있는 백신이 개발된다고 해도 이런 일상이 하루아침에 변경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전문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일상화다. 대학 공간에도 이런 삶의 변화가 어김없이 녹아들었다.

코로나19는 확진자나 격리자의 수, 감염병이 낳은 경제성장률 감소폭 등 다양한 관점에서 수치화돼 나타난다. 이런 가시적 요인 외에도 사람들의 일상에는 숱한 비가시적 영향을 미쳤고, 그 중 하나를 고르라면 ‘불안감’을 들 수 있다. 예상했던 일상이 언제라도 어그러질 수 있다는 불안의식뿐 아니라 거리두기가 불러온 사회적 고립감, 이른바 지표환자(첫 확진자)로서 타인에 대한 감염을 유발했다는 사회적 낙인, 이런 세간의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되겠다는 강박, 내 개인정보가 방역이라는 명분 때문에 너무 쉽게 공개되는 건 아닐지 하는 우려 등 불안감의 범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리방역’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용어로 등장했다.

 

이런 불안감을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지가 관심사일 것이다.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겠으나 거리두기가 공동의 가치로 엄존한 현실에서 제약이 있는 점이 고민거리다. 비대면이 일상화된 현실에서는 개인부터 변화해야 하는데, ‘마음을 단단히 먹자’는 추상적 조언은 ‘불안감을 그냥 버리자’는 말밖에 되지 않을 것이므로 개인이 매체나 SNS를 통해 소비하는 각종 정보부터 분별해 보자고 제안해 본다.

과거 중세의 페스트나 1918~1919년 스페인 독감 때에도 그랬듯이 사회적 불안이 크면 유언비어의 확산을 부른다. 사람들은 불안을 다스리려고 정보와 의미를 찾는데, 거리두기로 생긴 소통의 제약은 정보와 의미를 왜곡시킨다. 특히 온라인·모바일로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시기에는 더욱 위험이 커진다. 정보의 구슬이 서말이나 되니 누군가 꿰어줄 사람을 찾게 되는데, 어떻게 꿰는 게 타당한지를 검증할 도구는 찾기 어려워서 그저 호기심이나 단편적 호불호로 꿰어놓은 구슬을 찾는다. 음모론적 시각으로 코로나19 사태의 발발이나 유행 경위를 다루거나 ‘특정 집단은 보건소 검사를 받으면 다 양성이 된다’는 식의 이야기들이 자꾸 회자하는 것은 그만큼 미확인된 의미를 무분별하게 소비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그것을 알려주마’, ‘충격 진실’ 부류의 가공된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가급적 원래 데이터나 가장 뼈대가 되는 팩트를 먼저 파악해 보는 게 어떨까 제안하고 싶다. 이해하기 어려운 정보라면 이를 다루는 여러 가지 시각의 해석을 골고루 접하고 가장 상식적인 기준으로 판정해 보고 주변과 이야기를 나눠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차분하게 내 생각의 좌표를 찾아가면 일상 속 여러 의사결정 앞에서 생기는 불안감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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