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오승혜 기자

 

길을 잃어버린 이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지나간 시간을 모두 기억할 수는 없는 법이다 주머니에 난 작은 구멍에선 어느 바닷가의 흰 모래가 흐르고, 더운 여름 풀더미를 분주히 기어 다닌 달팽이의 진득한 흔적처럼 남는다 언젠가는 돌아가야만 한다는 듯 구태여 자취를 남기는 이유는 알 수 없다 너는 한 움큼을 끊어내어, 조금도 아깝지 않다는 듯. 묻고 싶다. 너는 왜 도망치지 않았는지. 어째서 시계추처럼 흔들리며, 영문도 모른 채 멈춰 선 건지

 

마냥 황홀하던 것들을 전부 보내주어도 무거워진 사람은 어디에 수납되어야 마땅한가

 

뿌옇게 부풀어 오른 그의 피부를 짓뭉개듯 눌러 넣으면, 묽은 감기약 같은 무언가가 비죽비죽 새어 나왔다(나는 그가 비에 젖은 커다란 지점토 같다고 생각했다) 한쪽 어깨가 닳아 없어지는 새벽에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의 눈은 탈피하지 못한 도마뱀의 그것과 같았다 반쯤 넘어간 눈꺼풀 사이로 그가 말했다 나를 채워줄래

 

가로등 불이 꺼지면 지겨운 아침이 온다 이미 깨끗한 거리의 가운데 그만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 지구는 너무 조그맣지, 그토록 가득 차서 나는 버려질 곳도 없구나 텅 빈 거리에 햇살이 쏟아지고 나는 별수 없이 팔을 들어 올려 그의 눈을 가렸다 날은 너무 좋았고, 단지 그뿐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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