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문에서 아침 선도를 설 때면, 고개만 들어도 시야에 잡히는 미용실을 난 시간이 날 때마다 힐끔거렸다. 그렇게 쳐다봐도 오늘따라 그 애가 일찍 오는 일은 없을 걸 알면서도 그랬다. 교칙으로 정해진 등교 시간이 가까워지면 갑자기 학생들이 몰렸다. 손뼘으로 귀밑머리 길이나 무릎 위 치마 길이를 정신없이 재다 보면 어느 순간 이상하게 소란이 사그러졌다는 걸 느끼는데, 그럴 때면 꼭 내 앞에 그 애가 서 있었다. 그 애는 모든 선도부원들이 꺼려 했으므로, 당연하게 내가 맡는 것이 이젠 규칙처럼 박혀 있었다.

 

손.

 

그 앤 자못 착하게 손등을 내민다. 매니큐어가 없다는 걸 보여주곤, 뒤집었을 때 손톱이 손 바깥으로 튀어나올 만큼 길지 않다는 것도 확인시킨다. 지나가라고 고개를 끄덕이자 그 앤 의아하게 묻는다.

 

왜, 오늘은 단 박아오라고 안 해?

 

다른 애들이면 박아놓은 단을 풀어오라고 말해야 할 테지만 이 앤 달랐다. 제발 단 좀 박아오라고 볼 때마다 사정을 해도 코웃음도 안 치면서, 내가 무시하려 하면 이렇게 얄밉게 물어왔다.

 

처음엔 흔히 논다는 애들이 그렇듯 이 애의 치마도 짧았다. 교칙엔 치마를 입었을 때 무릎이 보이면 안 된다고 되어 있다. 그래도 몇 년간의 학생들의 성토로 나름 완화된 것이 무릎 위 3cm까지 허용이었는데, 선도부장이 되어 새로이 본 이 애의 치마는 무릎이 훤히 다 드러날 정도의 길이였다. 단을 뒤집어 까보자 그냥 접어서 박은 것도 아니고 거의 한 뼘을 잘라버리고 박은 것이 뻔히 티가 났다. 할 말이 없어서 그 애를 쳐다보자, 그 앤 샐쭉하니 웃었다. 이미 자른 걸 뭘 어떡해? 뭘 어떡해, 사 와야지. 사 오라고? 돈은 땅에서 나냐? 그 애가 불만스레 목소리를 내자 절로 얼굴이 굳었다. 그걸 알면서 애초에 자른 건 넌데? 그 앤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앤 끈질기게도 말을 안 듣는 다른 애들과는 달리 다음날 바로 치마를 사 왔는데, 그 치마도 정상은 아니었다. 어떻게 교복 치마가 정강이에 닿지? 이전 사이즈보다 두 단계는 올려서 산 듯했다. 거기다가 단을 아예 다 뜯어버렸다. 밑단에 실밥이 너덜너덜하게 달려있는 게, 집에서 대충 커터 칼로 끊어낸 게 분명했다.

 

너 진짜 뭐 하냐?

일러스트 최은빈 기자

반사적으로 신경질이 새어 나왔다. 이 반응은, 어느 학교 선도부장이든 같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단 뜯어왔잖아.

 

그 앤 발랄하게도 말했는데, 그게 더 짜증 났다. 내가 교복을 원래대로 만들어오라고 하자, 그 애는 준비라도 한 것처럼 되물었다.

 

왜?

 

교복 변형 금지야.

 

안 잘랐잖아. 완전 단정한데?

 

단정이 문제가 아니라, 변형이 안 된다고.

 

단정이 문제가 아니면 왜 변형을 금지하는데?

 

아, 몰라, 규정에 있잖아. 이렇게 짜증을 내고 싶었는데 그런 말로는 이 애한텐 씨알도 안 먹힐 걸 알아 그냥 입을 다물었다. 선도부를 하면서 그런 부분은 생각해본 적 없다. 왜라니, 애초에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나도 내심 찝찝한 건 어쩔 수 없어서 이걸 선도회의 안건에 올렸다. 우리끼리는 결론이 안 나서, 결국 교무회의까지 올라가버렸다.

 

교무회의 했는데, 걍 네 맘대로 하래.

 

퍽 좋아할 줄 알았는데 그 애의 표정이 이지러졌다.

 

아, 또 뭐가 불만인데. 걍 입으라잖아.

 

야, 이게 뭐라고 교무회의를 했데? 그래서 니는 뭐랬냐, 벌점 맥여야 된다고?

 

단정하고 좋으니까 이참에 교복 싹 다 그걸로 바꾸자고 했지.

 

그 말에 그 앤 픽 웃는다. 니도 농담을 다 하네. 그러곤 가버린다.

 

내심 기뻐하는 반응이라도 바랐던 걸까, 약간 실망하게 된다. 그 앤 허구한 날 나보고 싱겁다, 싱겁다 하지만 난 그 애의 반응이 더 싱거웠다.

 

빨리, 빨리.

 

그새 내 앞에 선 다른 애가 검사를 빨리 해달라며 발을 구르며 재촉한다. 가라고 손짓하자 칸쵸! 하고 크게 외치며 뛰어간다. 그러자 그 애가 뒤돌아본다.

 

 

 

 

 

칸쵸는 그 애의 별명이었다. 아니, 선생님들도 이름 대신 칸쵸라고 부르는 걸 보면 이젠 이름이라고 말해도 되겠다.

 

1학년 때였나, 반에서 애들이 칸쵸가, 칸쵸가, 어쩌고 하며 얘기를 하는 걸 들었다. 처음엔 당연히 과자 얘기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듣다 보니 뭔가 이상해서 물어봤다.

 

칸쵸가 누군데?

 

떠들던 애들 중 하나가 대답했다.

 

걔 있잖아, 1반에. 그, 아, 이름이 뭐더라?

 

하곤 같이 얘기하던 애들을 보는데 그중에서 아무도 그 ‘칸쵸’의 이름을 아는 애가 없었다.

 

하여튼, 1반에 걔.

 

뭐라는 거야. 속말은 삼켰다.

 

걘 왜 칸쵼데?

 

하루 종일 칸쵸만 먹는다는데?

 

정말 별 이유 없는 별명이었다.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5반 애들 사이에서 1반 애 별명이 나오니, 좀 더 극적인 사연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칸쵸와 실제로 만나고 나서야 그 영향력은 칸쵸라는 단어가 아니라 칸쵸라는 사람 자체에서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멀리서 봐도 칸쵸는 분위기를 휘어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깔깔깔 하이톤으로 웃는 게 익숙한 불량안 줄 알았는데, 칸쵸는 나름 친구들한텐 매너 있게 행동하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2학년이 되어 선도부 활동을 하면서도, 부장과 다른 부원들에게 묻어가며, 칸쵸와 부딪힐 일은 없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 난 부장이 되었고, 이젠 칸쵸에게 귀찮게 굴 의무가 있었다. 난 칸쵸를 그전부터 알았지만, 아마 칸쵸는 짧은 치마를 지적하던 날 나를 처음 인지한 것 같았다.

 

칸쵸는 무섭게 생겼다. 칸쵸는 키가 크고, 말라서 턱뼈가 두드러지며 눈초리는 가파르게 위로 꺾여 있다. 그래서 편견임이 분명했지만, 막연히 칸쵸의 이름은 칸쵸같이 각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응이 세 개나 들어간, 둥글둥글한 이름은 칸쵸와 너무나도 안 어울렸다. 벌점 리스트에 그 이름을 적고 보면 매번 낯설었다. 그게 이 학교의 모든 사람들이 칸쵸를 칸쵸라고 부르는 이유일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선도부 담당 선생님은 칸쵸를 싫어했다. 비단 자주 걸려서만은 아니었다. 칸쵸는 좀, 순응하는 법을 몰랐다. 차라리 다른 애들처럼 단순하게 짜증을 내고 뒤에서 욕을 하면 강압적으로나마 밀고나갈 수 있었을 텐데 칸쵸는 자꾸 질문을 던졌다.

 

왜 그런 규칙이 있어요? 왜 그래야 돼요?

 

그럴 때마다 학생의 본분 운운하는 선생님을 볼 때면 칸쵸의 말도 이해가 갔다. 그래, 솔직히 지금이 몇 년돈데 복도에서 한 줄로 걷고 밥 먹을 때도 말을 못 하게 해? 다만, 그냥 따라주면 안 되나 싶었다. 뭔가 이상한 거야 다 알지, 그래도 이제껏 그렇게 지켜온 규정이고 지키지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따르면 안 되나 싶었다. 이런 말을 칸쵸에게 하면 칸쵸는 아무도 말 안 하니까 계속 이런 거지. 따위의 말을 했다.

 

칸쵸와 나는 그 무렵 썩 잘 지내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으려 드는 칸쵸가 얄밉다 못해 미웠다. 걸리면 괜스레 쌍욕을 해대는 애들보다 칸쵸가 더 껄끄러워, 나는 칸쵸만 보면 배가 아팠다. 선도를 앞두고 그냥 화장실에 가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칸쵸와 부딪혀야 한다는 의무감과 피하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사이 여름방학이 가까워졌다. 날이 더워지고 자꾸 비가 오니 여기저기서 고데기가 보였다. 고데기도 사용 금지였다. 고데기는 틴트 같은 화장품류에 비해 고가였기에, 쉽게 압수할 수가 없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애들이 좀 더 눈치를 안 보고 쓰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배가 더 자주 아팠다.

 

하루는 애들이 딱 봐도 불만인 표정으로 내게 무리 지어 왔다. 뭔 일인가 하니, 선도 담당 선생님이 어떤 애 고데기를 보고 그 자리서 가위로 그 선을 끊어버렸다는 거였다. 아, 이건 좀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애들은 꼭 내가 그 일을 한 것마냥 화를 냈다.

 

야, 이건 좀 아니지 않냐? 우리가 컬을 존나 넣겠다는 것도 아니고 머리 걍 단정하게 만들겠다고. 근데 그걸 그냥 잘라버리냐?

 

내 앞에서 짜증을 내는 애를 무시하고 교무실로 갔다. 가서 담당 선생님한테 이건 과하다고 성토를 했다. 고데기를 금지하는 이유를 명확히 제시하고 그걸 어겼을 때 조치도 일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괜히 교무실 한가운데 서서 일 대충 할 생각이냐는 핀잔이나 받아먹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지금 그 말 하는 게 아니잖아. 열이 나도 그 자리에서 더 논쟁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교무실을 나오면서 속으로만 답답한 선생들을 씹어댔다. 그러다 칸쵸를 마주쳤다. 반사적으로 피하려고 했지만 칸쵸가 더 빨랐다.

 

뭔 일 있냐, 얼굴이 시뻘겋네. 너 또 열받았나보네.

 

뭔 소리야.

 

열받은 거 아냐? 얼굴은 왜 빨간데.

 

열받은 거 맞았다. 구구절절 칸쵸 앞에서 얘기를 꺼낼 생각은 없었지만 누가 화난 걸 알아채주니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아니, 어이없잖아. 다짜고짜 고데기 줄 끊어버리는 게 말이냐?

 

뭔 소리야. 말을 좀 제대로 해봐.

 

칸쵸가 눈을 찌푸린다. 보아하니 칸쵸는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나 보다. 화를 삭이며 담당이 고데기를 끊어먹은 것부터 괜히 내가 욕을 들어먹은 것, 그리고 나도 그건 과하다 싶어 얘기를 하러 갔지만 안 좋은 소리만 듣고 왔다는 것까지 얘기했다. 그 말을 듣고 칸쵸는 묘하게 웃었다. 나는 칸쵸가 웃을 땐 좀 화가 난다. 보통 나를 곤란하게 만들고 웃었기 때문이다.

 

넌 또 왜 웃냐?

 

아니, 너도 부당한 걸 아나 싶어서.

 

여기서 뭔 또 부당함까지 나와.

 

여튼 그래서 얼굴이 일케 빨갰네. 넌 좀, 열받으면 얼굴에 티 다 나는 것 같애. 접때도 그러더니.

 

그 저번이란 건 저번주였나, 아침선도를 설 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테다. 선도부장이라는 이유로 욕을 못 하는 건 좀 불합리한 면이 있다. 상대방이 다짜고짜 욕을 갈길 때는 더욱.

 

너 진짜 인생 그렇게 살지 마라.

 

평소 머리카락에 대한 자부심이 큰지 머리 때문에 자주 걸리기도 하고, 혼잣말로 욕도 많이 지껄이는 애긴 했는데 아침 댓바람부터 이런 대사를 들어먹을 줄은 몰랐다. 이게 지금 친구나 바람이라도 돼? 영화에서나 나올 말을 면전에서 들으니 속으로 이 씨발, 하는 것 말곤 당황스러워서 말이 안 나왔다. 속으로 말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서 누가 한소리 얹었다.

 

야, 뭐래쌓냐. 니 인생이나 똑바로 살아.

 

칸쵸였다. 나한테 검사를 맡겠다고 기다리고 있던 모양이었다. 나는 칸쵸의 그런 간섭이 고마우면서도 뭔가 싶었다. 내가 뭔 말을 하면 받아칠 준비 만반이었던 그 애는 사납게 칸쵸를 돌아봤다. 예상외로 바로 달려들진 않았다. 나름 가늠을 하는 모양이었다. 내가 알기로 얘보단 칸쵸가 드잡이질을 더 잘한다. 그걸 얘도 아는지 또 혼잣말을 하곤 도망치듯 가버렸다. 칸쵸의 의중을 알 수가 없어 쳐다보자 칸쵸는 아무렇지도 않게 니 얼굴 완전 빨개. 하고 손바닥만 내보였다.

 

그때 칸쵸가 의외로 내게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그전까지 칸쵸에 대한 감상은 딱히 없었다. 칸쵸가 선도부를 좀 괴롭히긴 했어도 딱히 싫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좋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칸쵸의 불같은 성격을 보면 나를 도와주기 위해 그런 말을 했다기보다는 그냥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뱉은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의외였다. 생각보다 다정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무언가 계기가 될 만한 게 있었을까, 그때는 갑작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고데기 사건으로 칸쵸는 나에 관한 인식을 바꾼 것 같다. 칸쵸는 자주 인사를 했고, 그 입버릇 같은 왜, 라는 말을 좀 줄였다. 나는 그 성가심이 줄어든 게 너무나 기꺼워 열심히 인사를 받아주었다. 칸쵸가 인기가 많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칸쵸는 옆에 있으면 사람을 편안하게 만들고, 재밌게 해준다. 어쩌다 같은 여름방학 특강을 신청한 이후로 칸쵸와 나는 부쩍 가까워졌다. 칸쵸의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는데 둘 다 퇴근이 늦었다. 칸쵸의 언니와 오빠는 이미 대학생이어서 집을 벗어난 지 오래였다. 한 번 집에 놀러 가게 되니 두 번은 쉬웠다. 우린 여름 방학 내내 쓸데없는 얘기를 하며 시간을 같이 보냈다. 둘 다 산책하는 걸 좋아해서 발 닿는 대로 종일 걸어 다니기도 했다.

 

 

 

 

 

내내 붙어 다니면서도 조금 친해진 것 같다는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내가 칸쵸의 특별한 영역에 들어갔다는 걸 깨달은 건 개학 직후였다. 칸쵸는 내게 유해졌고, 가끔 예전처럼 이유를 따져 묻긴 했어도 결국은 내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애매한 고분고분함이 마음에 들었다. 가끔 참지 못하고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토로하는, 숨길 수 없는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예전처럼 더 파고들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수긍하는 게 내게 묘한 만족감을 줬다. 다른 애들이 칸쵸와 친해지고 싶으면서도 어려워하는 걸 보면, 그 만족감은 더욱 짙어졌다. 남들이 얻고 싶어 안달 난 걸 얻은 느낌이 들기도 했고, 무언가 상대하기 어려운 걸 끝내 길들인 것 같기도 했다.

사진출처·unsplash

칸쵸가 내게 타협한 것처럼 나도 타협한 것이 몇 가지 있었다. 대표적인 게 손이었다. 칸쵸는 의외로 스킨십을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타인의 온기, 이런 게 왜 좋은지 알 수도 없었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초반엔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잡아오는 손을 몇 번이나 뿌리쳤는데, 나중엔 맞잡고 있는 손을 문득 알아차리면, 이게 언제부터 이랬지, 고민만 하고 딱히 더 쳐내지 않았다.

 

중간고사가 한 달이나 남았을 무렵, 칸쵸는 고등학교에 대해 물었다.

 

너 여고 가?

 

우리 지역은 비평준화라서 고등학교를 선택해서 가야 했다. 하지만 지역이 원체 작아서 선택지가 몇 없었다. 칸쵸가 물어본 여고도 지역에서 유일한 여자고등학교라서, 그냥 이름이 여고가 되어버렸다.

 

아마?

 

기숙사는?

 

그리고 여자가 갈 수 있는 학교 중에 유일하게 기숙사가 있었다. 전국모집이라서 외지애들을 위해 기숙사가 있긴 했으나 우리 지역 애들도 일부는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집이 가까운 터라 기숙사는 생각해본 적 없다. 그리고 여고를 간다고 확실히 말할 수도 없었고.

 

뭐야, 지금 그걸 어떻게 알아.

 

웃어넘기려 해도 칸쵸는 끈질겼다. 기숙사를 들어가길 종용했다. 결국 칸쵸랑 새끼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해버렸다. 칸쵸가 이러는 이유는 곧 알게 되었다.

 

칸쵸가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칸쵸는 공부를 통 하는 법이 없었다. 이제까지는 말이다. 쉬는 시간마다 달려오던 칸쵸가 안 보여서 칸쵸의 반으로 가보면, 칸쵸는 책상에 코를 박을 듯 고개를 숙이고 공부하고 있었다. 얘도 여고 가려고 그러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더불어 어려울 거라고도 생각했다. 우리 지역 애들을 위한 자리가 따로 있어 외지 애들보다는 들어가긴 쉬웠지만, 그래도 이름 앞에 명문이 붙은 학교였다. 수시 비율이 커지면서 내신을 따기 힘든 여고를 기피하는 경향이 요즘 따라 생기긴 했지만 여전히 입결은 높았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칸쵸가 공부를 하지 않을 뿐,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똘망똘망하다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몇 년간 하지 않은 공부를 갑자기 한다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다른 학교를 가면 지금처럼 붙어있지 못할 텐데, 나한테 좀처럼 시간을 내주지 않는 칸쵸가 섭섭했다. 그 서운함을 비추지 않으려 했지만 티가 났나 보다. 그럴 때면 칸쵸는 너랑 같은 학교 가려고 그러잖아, 하고 나를 달랬다. 그건 꽤 위로가 됐다.

 

갑자기 전교 1등을 하는 것 같은 기적은 없었지만 칸쵸의 성적은 꽤 많이 올랐다. 나는 그제야 아쉬워졌다. 칸쵸가 한 학기만 공부를 일찍 시작했어도 같은 학교를 갈 수 있었을 것 같았다. 칸쵸는 나처럼 말로만 아쉬워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결과에도 1지망에 여고를 적어냈다. 그리고 칸쵸와 나에게만 좋을 아주 조그만 기적 같은 무언가가 일어나긴 했다. 우리 대입 때 수시가 70퍼센트가 넘는다는 발표가 나오면서 여고를 쓰는 원서가 확 빠졌다. 그리고 곧 여고 망했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말이 나올 때마다 칸쵸의 가능성이 쫙쫙 올라갔다.

 

결국 칸쵸는 여고를 붙었다. 무려 64퍼센트라는, 아마 여고 입장에서는 수치일 기록을 남기며 문을 닫고 들어갔다.

 

너 나랑 기숙사 같이 써야 돼. 무조건. 안 되는 거 없어.

 

난 칸쵸가 나랑 같이 고등학교를 간다는 게 너무 좋았지만 이렇게 강조하는 태도는 새삼스러웠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물었다.

 

우린 뭔가, 친구는 아닌 거지?

 

음, 칸쵸는 고민을 했다.

 

따지자면 그렇고, 따지자면 아니지.

 

칸쵸는 덧붙였다.

 

그리고 여대도 같이 가자.

 

왜, 기숙사 같이 쓰자고?

 

어.

 

바보 아냐. 대학교는 기숙사 다 있거든?

 

칸쵸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 웃었다.

 

 

사진출처·unsplash

 

 

쟤가 그 64퍼라고 칸쵸를 주시하던 눈들에게 보여주듯 칸쵸는 여고에 완벽하게 적응했다. 사실 나보다 더 잘 다니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생활은 중학교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바빴고 칸쵸는 여기저기 학교에서 하는 행사를 다 참여해서 남들보다 더 바빴다. 때문에 나는 기숙사에서나 칸쵸를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칸쵸가 밤에 우리 방문을 두드려서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방을 같이 쓰자고 우리끼리 약속해도 학교가 무작위로 돌리겠다는데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칸쵸는 내 룸메들한테 어떻게 선물이라도 바쳤는지 밤마다 우리 방으로 들어오는 데 성공했다.

 

점호가 끝나면 건물 전체가 소등됐다. 그러고 10분이 지나면, 칸쵸는 내가 사수한 1층 침대로 조심히 들어온다. 1층 침대를 잡으려고 정규 입사시간 30분 전부터 방앞에서 대기한 건 너무나도 잘한 일이었다. 담요를 바지걸이 두 개로 집고, 그 바지걸이를 2층 난간에 걸면 1층은 마치 커튼을 단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렇게 밖으로 새나가는 빛을 차단한 우리의 안락한 공간에서, 칸쵸와 나는 각자 노트북으로 할 걸 했다. 나는 그때쯤 소설을 써보기 시작했고 칸쵸는 행사 기획안이나 경시대회를 준비하곤 했다.

 

중학생 때에 비하면 칸쵸는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학교생활에 적극적이었다. 너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 좀 백치처럼 물어본 날이 있었는데 그때 칸쵸는 이미지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대답하는 칸쵸가 좀 낯설게 느껴져서, 학교 다니는데 무슨 이미지가 필요하냐곤 묻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다. 중학생 때 학급반장과 선도부를 한 것처럼, 고등학생 때는 학생회랑 기숙사자치회를 들어갔다. 난 태생부터 리더인 애들과는 달리 중요한 직책을 맡으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지만, 대학을 위해서도, 학교 내 지위를 위해서도 참고 수행하려 애썼다. 내가 기숙사자치회를 들어가고 나서부터 칸쵸는 더 이상 내 방에 찾아오지 않았다. 원래 기숙사 규칙으로 남의 방을 못 들어가게 되어있고, 중학생 때 나를 위해 교칙을 적당히 지켜주었던 것과 같은 배려라는 걸 알면서도 기분이 이상했다.

 

2학년 때도 여전히 칸쵸와 반은 달랐다. 분명 1학년 때는 약간의 괴리만 느낀 것 같은데, 칸쵸는 그 사이에 내가 모르는 방향으로 얼마나 많이 뛰어나간 건지 아예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젠 다들 칸쵸를 본명으로 부른다. 칸쵸라고 부르는 것은 나밖에 없다. 그게 다 저놈의 대자보 때문이었다.

 

정수기 옆에 붙은 커다란 대자보는 칸쵸가 쓴 것이다. 교내 혐오발언을 규탄하는 내용이 손글씨로 적혀 있다. 거기다가 맨 밑엔 이름도 박혀 있었다. 다들 이것 때문에 칸쵸를 본명으로 인식하는 것일 터였다. 어떻게 이름을 걸고 뭐든, 주장을 하지? 싶었으나 칸쵸는 자기 생각을 밖으로 내보이는데 거리낌이 없고 그에 따른 비판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곧 떠올렸다.

 

여고는 대대로 논객이 많았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유난히 호전적인 성격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았지만, 여하튼 그 탓에 정기토론회는 물론 이상한 대자보 문화까지 있었다. 나는 그게 참 유난스러웠다.

 

그거 꼭 해야 돼?

 

나는 얌전히 살고 싶었다. 칸쵸랑 내가 무엇으로 묶여 있는지, 추호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내 말은 물음이었지만 하지 말라는 뜻이었고 칸쵸는 아무 답도 않았다. 거절이었다.

 

칸쵸가 대자보를 걸고 나는 세상이 뒤집어질 줄 알았으나 그렇지도 않았다. 학교는 똑같아 보였고 칸쵸 옆엔 여전히 칸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잔뜩이다. 나는 칸쵸가 말한 그 이미지가 어디에 쓰이는지 알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나까지도 그런 이미지가 있는 건 알 수 없었고 나는 겁이 많았기 때문에 칸쵸와 나는 이제 아주 가끔만 만났다. 만나면 1학년 초와 같이 각자 할 일을 했다. 나는 여전히 소설을 쓰고, 칸쵸는 논평을 쓴다는 것만 달라졌다. 이제 칸쵸는 눈꼬리보다 시선이 더 날렵해졌다.

 

칸쵸와 나는 더 이상 손잡고 돌아다니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그만 만나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칸쵸는 칸쵸의 할 일을 했고, 나는 다만 코앞에 있는 대입에만 집중하려 노력했다.

 

고등학생의 시간은 중학생의 시간과는 너무나 다르게 흘러, 눈만 깜빡하면 무언가 선택할 것이 다가와 있곤 했다. 이번에는 대학교였다. 여고는 인문계고등학교로 졸업생 대부분이 대학교로 진학을 했다. 나는 칸쵸가 나를 찾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칸쵸는 중학생 때처럼 내게 진학할 학교를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물어봐야 했다. 칸쵸는 항상 생각해왔던 것처럼 묻자마자 답했다. 칸쵸는 언제부터 대학을 생각한 거지? 아니, 그전에.

 

거긴 문예창작과 없잖아.

 

한번 알아봤던 학교라서 알았다.

 

아……. 그래?

 

칸쵸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것처럼 말했다. 나는 그제야 뭔가 깨달은 듯한 그 곤란한 얼굴이 너무 싫었다. 칸쵸는 나를 염두에도 두지 않은 것이다. 칸쵸는 나를 달래려 들었지만 끝내 내가 어딜 가길 희망하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화가 나서 잠이 안 왔다. 칸쵸는 언제나 나와 독립된 개체였지만 멍청한 나는 그걸 이제야 깨달아버린 것이다. 칸쵸는 내가 아닐뿐더러 더 이상 내 울타리 안에도 들어와 있지 않았다. 칸쵸가 언제든 함께할 거라고 생각한 내가 짜증 났고, 그러면서 칸쵸를 위해 무엇 하나 포기 못 하는 내가 가증스러웠다.

 

사진출처·unsplash

 

칸쵸와 나는 결국 다른 학교로 진학했다. 칸쵸와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시간을 정해서 만났는데, 올 때마다 새로운 소식을 들려줬다. 난 여전히 칸쵸를 좋아했으나, 자꾸 투쟁하려 드는 칸쵸가 무서웠다. 칸쵸는 더 이상 목소리만 내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 그만큼 자유로워진 칸쵸는 여기저기 몸으로 뛰었다. 나라고 퀴어퍼레이드에 좋아하는 사람과 걷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원하는 건 행군 가운데 안전히 숨어 소녀시대의 다만세나 부르는 거였지 맨 앞에 서서 반대세력과 침 튀기며 싸우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는 꼭 우리가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이런 말을 했을 때 칸쵸는 약간 웃어 보였는데 그게 평소에 놀릴 때 자주 짓던 웃음이 아니라 일종의 허탈함과 같아 보여서 나는 볼이 붉어졌다. 비겁함을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어 수치스러웠다.

 

칸쵸는 내가 칸쵸와 어떤 사이인지 밝히지 않아도 될 정당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했다. 이미 자신을 세상에 드러낸 칸쵸와 똑같이 되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나는 꼭 그 세상에 강제로 몸을 내보이지 않아도 될 권리가 있다고 했다. 나는 정당함이니, 권리니 하는 칸쵸의 단어가 싫었다. 칸쵸를 구성하는 그런 진보적인 것들, 투쟁하고 쟁취해서 얻어내야 할 그 무언가가 정말 다 필요 없었다. 난 칸쵸를 그냥 조용히 좋아하면 됐고 그걸로 모든 게 끝이길 바랐다. 내가 이런 것들을 두서없이 이십 분 가량 말했을 때 칸쵸는 그런 것들로는 자신을 설득하지 못 한다고 하였고, 나는 좀 울고 싶어졌다. 할 수만 있다면 칸쵸의 머릿속에서 설득이니 뭐니 기사에서나 나올 법한 단어들을 삭제하고 싶었다.

 

난 이제까지 결혼이 되게 웃기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지금 너랑 결혼하고 싶다.

 

내가 이런 류의 말을 하면 칸쵸의 반응은 대개 웃는 것이었다. 맨날 글만 쓰다 보니 말로 뱉었을 때 오글거리는 말을 잘도 한다고 신랄하게 까대며 웃었다. 그런데 결혼 운운했을 때 비웃을 줄만 알았던 칸쵸는 의외로 꼭 그러자고 대답했는데 난 이제야 그 대답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 내가 말한 결혼은 그냥, 다른 나라 가서 혼인만 하고 오자는 거였다. 근데 칸쵸는 기어이 한국에서 결혼을 할 셈이었나 보다.

 

난 칸쵸의 이런 진취적인 모습을 볼 때면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건 너무 이상해서 짧은 말로 간추리기가 참 힘들었다. 일단 첫 감상은 우리가 그나마 현대에 태어나서 다행인 것 같다는 좀 핀트가 나간 생각인데, 어쩌면 이게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사의 여러 분기점들 중, 그 어느 하나에서 태어났다면 난 분명 전장에 뛰쳐나간 칸쵸를 붙잡지도 못 하고 눈물바람이나 찍어냈을 것이었다. 칸쵸가 믿는 대의에 긍정하면서도 칸쵸 본인은 선두에 서지 않았으면 하는 그런 이기심을 품고서.

 

 

 

 

 

칸쵸의 주변엔 늘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로 지낼 수 있는지 궁금해하다가도 곧 납득해버렸다. 하긴, 다정하니까.

 

하지만 그건 남들이 오해하고도 충분히 남을 다정이었다. 칸쵸는 같은 협회 사람들과 유튜브도 운영했는데, 자꾸 그중 한 사람과 엮였다. 댓글엔 다들 둘이 어울린다고 했고 칸쵸는 애매하게 굴었다. 그게 나와 칸쵸 사이를 함구하길 바랐던 나 때문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나는 내가 그 방송에 같이 얼굴을 보이는 것과 칸쵸가 애당초 얼굴을 보이지 않았어야 했던 것 중 무엇이 옳은지 따지고 싶었다.

 

우린 결국 각자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정말 우습게도 내가 꺼낸 말이었다. 칸쵸는 이 순간까지 배려가 넘쳤다. 난 의도적으로 칸쵸의 소식을 쳐냈다. 그래도 떠오르는 생각까지 막을 순 없었다. 난 칸쵸가 어느 시위를 나가서 뺨이라도 맞고 오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칸쵸는 내게 종종 말했다. 발언의 화자가 꼭 당사자라는 법은 없어.

 

칸쵸의 그 말대로라면 사실 칸쵸는 이론적으로 세상 모든 시위에 다 참석하고 또 거기서 뺨을 맞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하지만 정말 참다 못해 들여다본 sns에서의 칸쵸는 건강히 잘만 살고 있다. 이게 그 지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인가 싶었다. 난 어떤 형태든 성애가 표현되는 소설을 써본 적이 없다. 남들이 내가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 부분을 알아차릴까봐 두려웠다. 내가 그런 말을 하자 칸쵸는 간단하게도 답했다.

 

그니까, 니가 헤테로로맨스 쓴다고 이성애자인 건 아니잖아?

 

그렇지. 양성애자일 수도 있고 범성애자일 수도 있고 또 가능성은 많지. 당시엔 이렇게 웃어넘겼지만 칸쵸의 말 뜻은 이해가 갔다. 지레 찔려서 걱정하지 말라는 거였다. 하지만 난 결국 짧은 엽편 하나 써보지 못 했다.

 

칸쵸가 낯설게 보일 때 대입에 집착했듯 나는 이번엔 칸쵸의 부재를 글쓰기로 잊으려 했다. 난 칸쵸와 함께하면서 모든 형태의 비평에 질려버렸기 때문에 합평 시간만 오면 마음을 비운 채 어떻게든 시간을 흘려보려 애썼다. 정말 좋지 않은 태도인 걸 알아도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칸쵸의 비평을 하도 오래 못 듣다 보니, 이젠 합평마저 기꺼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모든 합평이 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각자 자기 글에 자부심, 혹은 자존심을 버리지 못 한 1학년의 합평은 쉽게도 변질됐다. 합평, 비평, 비판, 비난 바꾸기 쉬운 글자만큼이나 분위기도 빠르게 바뀐다.

 

그래서 지민과 예진은 무슨 사이입니까?

 

별로 영양가 없는 공격을 하기도 한다. 오늘의 표적은 1과대였다. 개인적으로 얘기를 해본 적은 없지만 칸쵸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겨 기억하고 있었다. 1과대는 표정변화도 없이 대답한다.

 

둘은 사랑을 하고 있습니다.

 

질문이 다시 돌아온다.

 

손 한 번 안 잡아본 둘이 사랑을 한다고 말하는 건 작가의 비약이 아닌가요?

 

손, 입맞춤, 그 이상의 무언가. 이성 간엔 눈길 한 번만 스쳐도 절로 쌓일 개연성이 그렇지 않을 때는 왜 이리 까다롭게 요구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1과대를 지켜봤다. 1과대는 당황스러워하지도 않고 무언가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퀴어는 유행에서 좀, 지난 것 같지 않나요?

 

퀴어는 장르도 아니고 유행도 아닌 것 같네요.

 

나는 문득 1과대와 밥을 먹고 싶어졌다. 그 이유는 모르겠다. 강의실 밖에서 기다렸다가 인사를 하자 1과대는 다행히 인사를 받아준다. 1과대도 나를 대충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밥 같이 먹자는 말은 참 쉽게도 나왔고 1과대도 쉽게 호응했다. 딱히 별말을 나눈 건 아니다. 1과대가 좋아한다는 덮밥집에 가서 각자 먹을 걸 시키고, 조용히 식사에 집중했다. 연어덮밥을 퍼먹으며, 문득 칸쵸가 연어덮밥을 참 좋아하는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대학생이 되어 칸쵸와 단둘이 밥 먹은 기억이 없다.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 주 주말 오랜만에 본가로 내려왔다. 중학생 때 칸쵸와 지겹게도 걸었던 그 길을 멍하니 걷고 있노라니 당연하지만 자꾸 칸쵸 생각이 났다.

 

칸쵸와 나는 다르다. 칸쵸는 정말 건강한 사람이지만 나는 예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의식한다. 칸쵸 말마따나 내가 무언가 행동해야 하는 건 의무가 아니다. 나는 나를 스스로 보호할 권리가 있다.

 

다만, 이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칸쵸의 모든 걸 같이 할 순 없겠지만, 지금 당장은 칸쵸를 묘사하고 싶어졌다. 칸쵸와 다시 만날지는 모른다. 나의 마음도 알 수 없고 칸쵸의 마음도 알 수 없다. 그냥, 칸쵸가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같이 보고 싶을 뿐이다.

 

오랜만에 심장이 크게 뛰는 걸 느낀다. 긴장인 것 같기도 하고, 설렘인 것 같기도 하다. 쓰고 싶은 글이 많았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