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땅에 발을 디딘 지 어느새 두 달이 넘었다.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첫 해외 여행. 이제 이곳 생활에 꽤나 익숙해졌다고 믿다가도 가끔씩 내가 정말 미국 땅에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내가 와 있는 곳은 인디애나 주의 블루밍턴(Bloomington)이다. 인디애나폴리스 남서쪽에 위치한 인구 7-8만명의 소도시로, 인디애나대학(Indiana University)의 주 캠퍼스가 이곳에 있다. 이곳 전체 인구 가운데 인디애나대학 학생이 2-3만명에 이르니 블루밍턴은 명실상부한 대학도시라 할 수 있겠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아름다운 곳이다.

인디애나대학은 음악이나 경영학, 교육공학 등의 분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민속학 분야에서의 위상이 그에 못지 않다. 설화 화소 색인(Motif Index)을 이룩한 톰슨(S.Thompson) 을 비롯해 하임즈(D.Heyms), 대그(L.D gh), 바우만(R. Bauman) 등 내로라 하는 학자들이 이곳에서 연구활동을 하면서 세계 민속학의 흐름을 주도해 왔다. 학과 부설의 민속학연구소(Folklore Institute)에서 발간되는 민속학 연구 저널(Journal of Folklore Research)은 세계적으로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인디애나 민속학과에서 내가 수행중인 연구활동의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민속학의 세계적인 동향을 소화 흡수하고, 우리의 민속과 문학을 국제적으로 알리며,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을 제출하여 검증받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현재 연구 논저와 관련 자료들을 점검하고 정기 세미나에 참여하기도 하면서 기초적인 연구작업을 진행하는 중이거니와, 점차적으로 활동의 폭을 넓혀 나갈 예정이다.

인디애나 대학 민속학을 대표하는 바우만 교수의 연행학(Performence Study)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받은 느낌은 복합적인 것이었다. 세계 민속을 아우르는 방대한 텍스트를 놓고 벌이는 넓은 시야의 학습과 토론에는 세계의 학문 흐름을 주도한다는 자긍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석사·박사과정)의 주제 발표는 준비의 성실성 및 논의 수준에 있어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면이 있었다. 간단한 구상 차원의 발표가 대부분이었고, 권장 사항이었던 미디어 활용의 수준도 아직 초보적인 것이었다(적절한 비교는 아니겠지만, 우리 국문과 학부생의 발표보다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기회가 되면 우리 학생들의 미디어 발표자료를 이곳에 소개해 볼 생각이다).

그러나, 관건은 작업의 완성도보다 ‘창의적 아이디어’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민속학의 일환으로 ‘연행’을 연구하면서 중국의 요리, 몽고의 이야기꾼, 러시아 혁명, 뱀파이어. 락 밴드, 음란가요, 아이돌 스타 게시판 등을 주제로 삼는 개방적이고 현대적인 사유에 담겨 있는 학문적 잠재력은 절대 만만한 것이 아닐 터이다.

이곳에서의 나의 중점적인 연구주제는 현대 미디어 환경 속에서의 구술 문화(특히 이야기 문화)의 양상을 역사적 안목에서 점검하고 전망하는 일이다. 전통적인 이야기문화가 TV와 인터넷 등을 통해 변형 내지 재현되고 있는 양상에 주목하고 있거니와, 한국과 미국 사례의 비교를 통해 보다 거시적이고도 유효한 이론적 전망을 열어보자는 계획이다.

한국에서도 그러하지만 이곳 미국에서도 미디어를 ‘구비문학’과 연관지어 조망하는 방향의 연구가 아직 미미한 상태라서 이번 연구작업이 새롭고 놀라운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아직 연구가 충분히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서 사이버세계가 이야기문화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데 비해 미국에서는 일상적 만남 속의 이야기문화가 여전히 활발하고 TV 속의 이야기판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상과 접하면서 과연 그것이 미디어 환경의 차이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문화나 사고방식의 차이에 의한 것인지를 다각도로 따져보고 있는 중이다.

끝으로, 이곳 민속학과의 종강파티 풍경을 잠깐 소개한다. 학과 세미나실에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모여 간단한 음식을 차려놓고 행사를 치렀는데, 공식 행사에 이은 ‘함께 노래하기’ 시간이 인상적이었다. 몇 명의 학생이 토속적인 악기를 들고 나가 연주를 하는 가운데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즉석에서 가사를 만들어 노래를 부르며 함께 즐기는 모습이 무척이나 화기애애했다. ‘그래, 이곳이 과연 민속학과로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학생들과 어울려 어깨춤 덩실 추면서 ‘진도아리랑’ 부르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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