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정복을 위해 떠난 ‘2003 건국 에베레스트 원정대’를 따라 한달간 동행취재를 다녀왔다. 한달간의 여정을 수기로 싣는다(존칭 생략).
- 편집자 풀이 -

지구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에 인류 최초로 발자국을 남긴 것은 50년 전인 1953년. 뉴질랜드의 양봉업자 에드먼드 힐러리(현 84세)는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고난에 찬 행군을 시작한 지 6개월 만인 5월29일 셀파(길안내자) 텐징 노르게이와 함께 에베레스트 정상에 섰다. 에베레스트가 지구 최고봉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지 100년 만의 일이었다.

초등 50주년이 되는 올 2003년 건국인도 그 영광의 순간에 함께 하기 위해 에베레스트 정복에 나섰고 필자는 무턱대고 동행취재차 이들을 따라 갔다. ‘2003 건국에베레스트원정대’(아래 건국원정대)라 이름 붙여진 이 팀은 건대산악부 출신인 임종하 대장, 이동구, 김종규, 임창환 선배와 현 건대산악부원인 김동현, 류웅희, 김동현군 그리고 유일한 홍일점인 남혜영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단장 건대산악부 양동훈 선배, ‘굿데이’ 김산환 기자, ‘사람과 산’ 임현주 기자가 동행했다.

■원정등반 시작!

지난 3월 20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홍콩을 거쳐 네팔의 수도인 카트만두에 도착했고 그곳에서 마지막 준비를 끝낸 후 24일 경비행기를 타고 루크라(해발 2,840m)에 도착해 등반을 시작했다. 에베레스트 등반을 할 때는 루크라에서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수도인 카트만두부터 루크라까지 걸어가게 되면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하루 8시간 이상의 고된 행군이 시작되었다. 첫날 팍딩(해발 2610m)을 거쳐 25일 고소증세가 처음 시작된다는 해발 3,440m의 남체에 도착했다. 남체에 도착하자 한두명의 대원들에게 가벼운 고소증세가 나타났다. 고소증이란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산소가 줄어들어 생기는 고산병으로 보통 두통이나 소화불량, 무기력증 등의 증상을 보인다. 등반시 고소적응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이 남아도 하루에 고도를 많은 올릴 수가 없다. 건국원정대도 고소적응을 위해 다음날 남체에서 휴식을 했다.

팍딩을 거쳐 남체에 오자 루크라에서 오른 쪽으로 보인 꽁데(6,187m)가 왼쪽으로 보이는 것을 보니 산 하나를 빙 둘러 온 모양이다. 남체를 지나자 서서히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낭의 무게를 최소한으로 메고 가도 힘든 산을 30kg의 짐을 지고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포터라 불리는 짐꾼인데 이들은 네팔 현지인으로, 원정대의 짐을 베이스캠프까지 수송해주는 사람들이다. 하루를 꼬박 걸어 27일 팡보체를 지나 오후 6시 해발 3,820m의 데부체에 도착했다. 팡보체는 히말라야에서 가장 멋진 산 아마다블람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고 한다. 아마다블람은 해발 6,856m로 모습이 사자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과 비슷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산이다.

■드디어 4000m를 넘어...

다음날은 드디어 4,000m를 넘어 해발 4,240m의 페리체에 도착했다. 이날은 처음으로 눈을 맞으며 등반을 한 날이었다. 주위에도 이제 눈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많은 눈은 아니었지만 눈을 맞으며 올라가니 베이스캠프가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페리체에서도 고소적응을 위해 다음날 하루를 쉬었다. 하루 종일 쉬기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고소적응차 뒷산에 올랐다. 말이 뒷산이지 대략 해발 4,550m의 높은 언덕이었다.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도중 원정대는 롯지(Lodge)라 불리는 곳에 머문다. 롯지는 한국의 산장쯤 되는 곳으로 베이스캠프 전까지 원정대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고도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하루 숙박비가 이곳 돈으로 100rs 정도이다. 한화로 약 2,000원. 음식도 사먹을 수 있고 세면을 위한 따뜻한 물도 제공하지만 난방이 되지 않아 밤에는 매우 춥다. 어떤 날은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아플 정도다.

그날 밤 모두 모여 이야기를 하던 중 지난 겨울 사전답사를 왔던 웅희형이 내일이 가장 큰 고비라고 엄포를 놓았다. 내일 올라가야 하는 고도는 약 700m. 베이스캠프까지의 등반기간 중 하루에 가장 많은 고도를 올리게 되는 것이다. 페리체에서 심한 고소증세를 보인 양단장과 임기자를 비롯해 대원들이 모두 긴장을 했다. 하루에 700m라니 그것도 4,000m를 넘은 시점에서...

■가장 힘든 페리체∼로브체

다음날 모두 마음 속으로 오늘의 등반을 걱정하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페리체를 지나면 더 이상 나무는 물론이거니와 풀 한포기도 없다. 밤 날씨가 너무 추워 이제는 식물이 살수 없다고 한다. 황량한 산을 걸으니 힘이 더 드는 느낌이었다. 페리체에서 약 3시간 정도를 올라가다 보면, 히말라야를 오르다 사망한 분들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모여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는 푸모리(해발 7.165m)를 올라가다 실종사한 한국인의 추모비도 있다.

해발 4,910m의 로브체에 도착하니 대원들의 상태가 모두 좋지 않았다. 이제는 두통약을 먹어도 효과가 예전만큼 좋지가 않다. 다음날 베이스캠프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대원들의 상태가 모두 좋지 않아 대장이 계획에 없던 하루 휴식을 결정했다. 필자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일종의 무기력증에 걸려 있었다. 오늘은 쉰다는 대장의 말을 듣고 그대로 다시 잠이 들었다. 다행이 한숨 자고 일어나자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드디어 베이스캠프!

해발 5,400m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마지막 날. 로브체를 떠나 조금 올라가다 보면 언덕 아래 비석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이것도 원정등반 중 사망한 한국인을 추모하는 비석이었다. 하지만 영어로 써있는데다 비석이 깨져 있어 누군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고 베이스캠프를 향하는 길은 마지막 고비. 고도는 별로 높아지지 않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지겨운 길이다. 멀리 베이스캠프는 보이는데 아무리 걸어도 가까워지지 않는, 한마디로 짜증나는 길이다. 그리고 이곳을 간신히 지나 드디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지만, 말이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지 에베레스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앞에 다른 산들이 자신의 위용을 뽐내듯 솟아 있어 에베레스트는 볼 수가 없다.

베이스캠프에서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길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눈이라고 해봤자 길에 조금씩 쌓여 있는 길을 걸어온 지금까지와는 달리 베이스캠프 이상은 완전히 눈밭이다. 눈에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아이젠이라는 장비도 착용해야 한다.

그런데 도착한 다음날 문제가 생겼다. 하루를 자고 일어난 필자가 완전히 ‘고소를 먹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가 없었던 것이다. 대장이 필자의 상태를 보고 낮은 지역으로 내려갈 것을 결정했다. 하지만 필자가 몸을 가눌 수가 없어 사람과 말 등에 업혀 약 1,000m정도의 고도를 내려왔고 다행히 3일 정도 쉬고 상태가 많이 좋아져 베이스 캠프로 다시 올라갈 수 있었다.

 

필자는 건국원정대가 캠프2(약 6,400m)까지 설치했을 때 한국으로 돌아왔다. 원정대는 현재 캠프4(약 8,300m)까지 진출했으며 13일~14일경 정상 공격을 예정하고 있다. 처음 호기심과 오기에 따라갈 결정을 내렸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비록 정상까지는 가지도 못하고 에베레스트도 멀리서 손톱만큼 작게 보는데 그쳤지만 왜 그들이 그렇게 산을 사랑하고 오르는지는 조금, 아주 조금 알 수 있었다. 지금은 사정상 끝까지 함께 있지 못해 너무 미안한 생각이 든다. 별 도움은 않되겠지만...

“에베레스트는 신이 허락한 자만이 정복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건국원정대원 모두 신의 허락을 받기를 기원한다. 건국원정대에 관한 자세한 소식은 건대산악부 홈페이지(kuac.krdns.net)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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