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 「오래된 미래」를 읽고

이제 흘러간 노래에 속하게 되었지만, ‘넥스트’의 ‘도시인’이라는 노래에 나왔던 도시인은 매일 매일 주어진 구획화된 일상의 시간 속에서, 그 시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 한편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 걸 맞는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는 근대인들의 모습은 새삼스럽지 않다.

티벳의 황무지인 라다크의 행복한 사람들은 그러한 근대인들에게 ‘대안적 사유의 장’을 제공한다. 먼저 새로운 사회의 공동체 구성의 원리를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인의 이익이 전체 공동체의 이익과 상충하지 않는 사회’라는 문구를 들었을 때, 나는 맑스가 보여주었던 이상사회의 모습을 다시 한번 발견한다.

라다크의 사람들은 무엇이든, 심지어는 다양성, 창의성조차도 상품이 되어서 팔려야 한다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매몰되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여워하거나 당황하지 않으며 자신 나름의 ‘속도’와 ‘방향’에 맞추어, 구성원간에 일률적인 평등의 원리가 아닌 차이의 인정과 그에 따른 조화의 원리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은 우리에게 꿈을 꿀 여지를 제공한다.

또한 라다크의 사람들은 땅과 함께 호흡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유목, 경작 등으로 삶을 유지하는 방법과, 자연의 회복력을 통한 치료의 방법 등이 그것이다.

우리가 언젠가는 해보았지만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 함께 점차 우리에게 익숙해져버린 소비사회에 매몰된 나머지 잃어버린 ‘오래된 미래’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진보는 지속 불가능한 개발, 굶어죽을 자유만을 보장해 왔다. 이제 오래된 미래와 접속하여 다시 자본주의의 황폐한 파괴적 기계문명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나 우리의 다리로 딛고 일어서는 연습을 해본다면,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웰빙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