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지난 14일 외교경로를 통해 주한미군 2사단 1개 여단을 주축으로 4천명 수준을 이라크로 파견할 것이라고 정부에 타진하자, 외교통상부는 지난 17일 수용의 뜻을 밝혔다. 그런데 이라크로 파견할 미군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조짐이 보이자 이에 대해 불안해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주한미군 이라크 파견이, 공공연히 떠돌던 ‘주한미군 감축계획의 시작’이라는 분석부터 ‘파병을 지연시키고 있는 한국정부와 파병반대여론에 대한 항의’라는 분석까지 다양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미군의 주둔, 이동 그리고 철수의 문제들이 미국의 세계전략 차원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주한미군 전출은 작년 11월 부시가 발표한 해외주둔 미군재배치 계획(GPR)의 일환이며, 부시행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미군의 ‘신속 대응군 전략’ 즉, ‘럼스펠드 독트린’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 밖에도 이라크의 저항, 포로학대에 대한 국제적 비난, 그리고 스페인·이탈리아와 같은 주요 동맹국들의 철군 등의 ‘이라크 악재’라는 더욱 큰 요인들에 의해 등장한 것이다.

이렇게 미국 세계전략의 큰 틀에서 이루어진 계획에 대해 우리나라 대다수의 정치권과 기성언론들은 ‘미국의 태도가 한미동맹을 깬 매우 이례적인 일’인 것처럼 얘기하고 있다. 그들은 일련의 미군범죄에 대해 미국이 동맹국으로서의 예의를 지켰는가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게다가 현실적으로 1949년 완전철수 이후 미국은 5차례에 걸쳐 철수·감축하면서 ‘동맹국’인 한국과 깊이 있는 협의를 거친 예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전출에 ‘한미동맹’을 거론하는 것은 꽤나 무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한미동맹에 대해 깊이 검토해 봐야 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협력적 자주국방’은 ‘한미군사동맹’에 관한 조약과 협정이 근본적으로 제고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시 군통수권을 한국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주라는 말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진정한 자주는 주한미군 철수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거나,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파병을 거부했을 때 경제보복을 당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을 포장한 ‘현실론’이라는 것의 실체를 직시하는 것에서 출발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주한미군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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