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 (문과대 ·국문 4)양을 만나서

설경. 눈이 있는 풍경.

이름이 가진 묘한 아름다움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추웠다, 더웠다,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하는 봄날의 불안한 따스함과 함께 피부에 차갑게 닿는다. 벚꽃과 개나리가 피어 환한 봄낮 ‘설경’ 그녀를 만났다.

새천년관 옆 벤치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니 작년 모 의류브랜드 모델로서 망연히 박혀 있던 광고종이 위의 모습보다 땅 위의 경쾌한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이 훨씬 자연스러워 보인다. 생각보다 작은 키, 빛바랜 청녹색의 머플러, 큰 모자 밑에 삐죽 튀어나온 땋은 머리, 불투명한 보랏빛 귀걸이 그리고 진달래 꽃물이 흠뻑 물들어 있는 진한 손톱, 이 모든 것이 꼭 언제나 정신적 풍요를 갈망하는 보헤미안을 닮았다.

광고를 찍게 된 연유를 묻자 “홍대 레이블 파티에서 놀다가 픽업되어서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할 겸으로 몇 개 찍었어요”라며 조용조용, 하지만 또박또박 얘기한다. 그 말투 속에서 그녀와 비슷한 느낌의 사람들이 가진 독특하지만 조심스러운 고집이 보인다.

“음악이 듣고 싶으면 홍대 앞 클럽을 가요. 클럽의 자유로운 분위기와 부드럽고 몽환적인 이끌림이 참 좋아요. 친구들도 대부분 그곳에 있고… 스피커를 통해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어폰에서 들리는 소리와는 다른 깊이가 온 몸으로 느껴지죠”라고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클럽매니아의 눈길이 땅에서 살짝 올라온다. 이어 한 달에 클럽에 몇 번 가냐는 질문을 던진 기자가 당황스럽게 “일주일에 4번 정도 가요”라고 대답하며 겸연쩍게 웃는 모습이 이제껏 긴장된 공기를 파괴하면서도 편안함을 잃지 않는다.

“예술을 하는 이유가 ‘표현하고 싶다’잖아요. 물론 쉽진 않지만 저를 100% 표현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이 말을 듣고 난 후 작가를 꿈꾸는 벌써(?) 국문과 4학년인 그녀를 찬찬히 살펴보니 어렴풋하게 작가의 감성이 배어있는 것 같다.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한 은희경의 ‘그것은 꿈이었을까’라는 책을 인상적으로 봤어요. 기존의 소설이 가진 아기자기한 면은 없지만 강한 분위기와 이미지가 매력적이거든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고 하는데 그녀는 무엇을 보았을까? 그녀의 영혼을 잠식한 냉소와 무심한 외면이 불안하게 흔들려 보인다. 하지만 영혼을 구제하는 것은 언제나 끝없는 불안이 아니던가.

“후회없이 살고 후회없이 노세요. 그냥 빈둥거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내고… 누리면서… 한 번 잘∼ 놀아보세요.” 마지막으로 본인의 경험이 배어든 고요한 충고를 후배들에게 남긴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는 인터뷰 내내 그랬던 것처럼 땅을 보고 걸어갔다. ‘갇힌 것을 싫어하면서도 그것을 즐기는 자신의 모순적 습관’이란다. 그녀의 핸드폰 컬러링으로 저장된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가수 ‘라디오헤드’의 아주 오래된 명곡 ‘creep’이 이제는 눈빛을 훔쳐볼 수 없는 그녀와 퍽이나 잘 어울린다.

“I don’t belong here”

그녀는 아웃사이더 보헤미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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