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쿼터 더 이상 숫자놀음으로 판단해서는 안돼

 

필자는 사진기자다. 사진을 담당하는 기자다. 취재기자들은 기사를 작성한다. 취재기자들은 가끔 이런 말을 툭 내뱉는다. “사진기자는 좋겠어, 셔터만 누르면 되잖아.”

사진은 예술이다. 사진은 ‘결정적 순간’을 ‘심리적 순간’으로 승화시키는 예술이다. 그러나 이런 말은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사진은 단순히 사물을 복사하는 기술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또한 마찬가지다. 단지 우리 삶의 유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상품에 불과하다. 현실에서 사진과 영화는 예술이 아니다. 단지 상품일 뿐이다.

필자는 경제학도다. “다른 국가와 무역을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득이다. 또한 국민의 후생이 증가한다.” 이는 경제성장을 의미한다. 지금은 경제성장이 필요하다. 상품을 다른 국가와 교역해 이익을 얻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 우리사회는 이런 생각들로 가득 차있다. 사진은 신문의 시각적 도구다. 영화는 굴뚝 없는 산업이다. 사진이 없으면 기사를 넣으면 되고, 영화가 없으면 텔레비전을 보면 된다. 우리에게 문화, 예술은 없다. 오직 돈을 벌기 위한 도구만이 존재한다.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스크린쿼터도 마찬가지다. 문화는 없다. 단지 산업만이 존재한다. 우리 영화문화를 지킬 수 있는 스크린쿼터는 이미 오래 전부터 관객 수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영화의 경쟁력은 오직 시장점유율로만 판단한다. 예술성은 그 다음의 문제다. 점유율에 의해 영화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스크린쿼터 유지나 축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스크린쿼터의 문제에 앞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다.

감독의 뇌리를 스치는 한 줄기 영감이 한편의 영화를 이루고, 사진가의 망막을 가로지르는 한 순간의 빛이 한 장의 사진으로 표출된다. 그것을 우리는 단순한 화폐의 숫자 혹은 관객의 수로 판단한다.

우리에게는 스크린쿼터 유지나 축소에 관한 논란보다는 문화와 예술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필요한 시기이다. 이런 담론이 제대로 형성되면,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스크린쿼터 논란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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