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서울에서 자취하던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그 친구는 복학 준비를 하느라 고향에서 짐을 꾸리면서, 한파를 피해 지하실에 내려놓은 선인장 귀 하나를 떼어서 조그만 화분에 담아 서울로 왔다. 함께 몇백 리를 달려와 반지하 방 밥통 곁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아마도 근사한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나와 선인장, 레옹의 그것처럼 낭만적으로도 보이잖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 친구는 선인장을 잊었고, 그러다 문득 눈에 들면 ‘오래 물을 못 주었구나’ 하는 생각이 나서 바가지나 밥그릇 등 손에 잡히는 대로 물을 떠 목이나 축여주는 정도였다. 다행인 것은 선인장이 본래 사막 태생이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가끔 생각했다. ‘내가 술에 찌들어 비틀대는 걸 보았겠구나, 담배연기는 지독했겠지, 목이 타 주전자를 거꾸로 들고, 허기진 배에다 싱거운 밥술을 떠 넣는, 라면이 익는 3분 동안 그 3분 동안도 견디지 못하고 담배 한 개피가 타 들어가는...... 넌, 다 봤지.’ 많은 비밀도 선인장은 다 알고 있다고 여겼다.

초조해하고, 들뜬 맘을 다스리고, 분을 삭이고, 또..... 늦게 일어나 방을 나서던 친구. 문을 열 때 눈부셔 낯을 찌푸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본 것도 그 선인장이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서야 집에 돌아온 친구는 선인장을 볼 수 없었다. 반지하 방. 빛은 충분치 않았다. 친구는 참을 수 있었지만, 사막에서 꽃피우는 선인장에게는 미안했다. 어쩌면 1년 전 그때 선인장을 안아오며, 더 깊숙이 갱도를 뚫어 가는 광부의 앵무새를 생각했는지 모른다. 친구는 선인장의 허리가 굽어가는 것을 보고 그건 일조량이 부족해서 그렇겠거니 믿고 가끔씩 돌려세웠다. 고루고루 쬐라고.

그런데 그건 무게 때문이었나? 결국 꽃을 피우지 못했다. 선인장 한 귀가 떨어져 나온 그 어미의 몸처럼 작은 그것의 옆구리 어디서 붉은 꽃, 단 몇 시간만 생기 짙은 그 붉은 내장이 터져나오길 바랬는데..... 조금만 더 살찌는 걸 봐서 집을 옮겨줘야겠다고 그 친구는 지금의 터보다 몇 배나 큰 화분을 눈여겨 봐두기도 했었다.

그러나 빛을 놓고만 따졌을 때 이전의 반지하 방과는 비교할 수 없이 기쁜 3층집으로 옮겨온 후 그 작은 선인장은 시들었다. 그 친구는 붉은 꽃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조혜진 일반대학원·국문학 석사1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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