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구(상경대·경제4휴)씨를 만나

지난 8일, ○○술집에서 만난 왜소한 체격의 이은구씨. 몸은 불편하지만 그 누구보다 밝은 표정으로 기자를 맞아준 그와 소주잔을 함께 주고 받으며 그동안 가슴에 응어리진 장애인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비장애인들이 아무리 장애인들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도 못하는 세심한 부분들을 해결하고 싶어서 장애인인권위원회(아래 장인위)를 만들어 활동했었어요...”

장인위는 지난 한 해 장애인들의 수업권, 이동권, 취업권 보장을 주장하였던 단체로 전학대회 무산 때문에 인준도 받지 못한 채, 지금은 주변의 관심 부족으로 활동이 중단된 상황이다. 한때는 장애인 인권을 지켜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였지만 지금은 아쉬움만 남는 지난 일이기에 말끝을 흘리는 그의 모습에서 순간 얼굴에 그늘이 스치는 것을 느꼈다.

공부하기 위해 온 대학에서 장애학우용 책상 조차 없어 수업권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엘리베이터 미설치로 사회과학관을 올라갈 때면 너무 힘들다”는 말까지. 작년에 경사로ㆍ화장실 표시판, 장애학우용 외부계단공사 등을 하였지만 장애학우를 위해서가 아니라 대학평가를 위한 것이었던 만큼 외형적 개선에만 그쳤다고 평가한다.

“장애학우들에 대한 생각, 한시라도 했나”

지난해 총학선거 당시, 3팀의 후보 중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장애인권과 관련된 문제는 지속적으로 해결해야할 필수 과제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3팀의 후보 모두에게 제안서를 보냈지만 ‘좋은 소식’은 당선 이후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던 총학이 실제로 장애인 문제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의문이 든다. 과연 그러고도 학우들의 총학이었는지... 간담회 때 ‘우리대학에서 장애학우의 현실을 보면 가슴이 저려온다’며 ‘장애학우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던 총학의 말 역시 학교 측과 다를 바 없는 보여주기일 뿐이었다.

“안떨어진다. 그 이유는 경증이니까!”

고3 당시, 담임선생님이 원서를 써주면서 했던 말이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대학입시에서 장애인은 성적보다도 신체적 불편함의 정도가 합격여부를 결정짓기 때문이다. 학창시절에 수학을 좋아해서 이공계 진학을 고민했다. 하지만 우리대학은 장애인의 이공계 지원을 허용하지 않기에 지원할 수 없었다.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가 장애인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했는지 의문이 든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교육의 기회까지 박탈당했기에...

“장애인도 사랑을 하고 싶다”

만약 장애인이 사랑을 고백한다면 어떨 것 같냐? 솔직히 당황스럽고 많은 고민이 드는게 사실이 아니냐. 이런 부분에서도 비장애학우들은 이중시각을 가지고 있다. 미안해 할 필요없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는데 누구를 탓하겠는가.

고1 때, 여자친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있었는데 나랑 같이 있을 때면 주변의 시선을 창피하게 느끼는 것 같아 결국은 헤어졌다. 대학에 와서도 몇 번 고백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친구 이상 생각해 본 적 없다’며 그 자리에서 퇴짜를 놓았다. 이제는 정말 사람이 사람을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는게 두렵다.

“장애 극복, 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매스컴에서 성공한 장애인들의 모습만을 보게 된다. 강원래씨의 경우처럼 장애극복과정을 인간승리에 비유하며 방송하는 프로그램들. 하지만 장애는 장애다. 엘리베이터 설치와 같이 시설이 개선된다고 해서 장애가 없어질까? 물론 시설과 주변의 도움으로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과정에서의 자기노력은 나 역시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이런 방송행태는 비장애학우들이 성공한 장애인의 특정 모습만을 바라보게 하고, 결국은 평범한 장애인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도 없이 잘못된 시각만을 가지게 만든다.

“너보다 낫다 보여주기 위해 공부했다”

단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손가락질과 놀림을 받아왔다. 그래서 주변의 곱지않은 시선들에 맞서기 위해 좀더 치열하게 살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시험칠 때 비장애학우들은 공부한 내용을 토대로 답안을 작성하기만 하면 되지만, 나는 공부를 해도 답안을 쓸 수 없을 때도 많았다.

남들이 A4 한 장 쓰는데 30분이 걸린다면 나는 1시간 정도 걸린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 역시 너무 힘들고 오래 걸린다. 그래서 시험을 칠 때는 미리 교수님께 시간연장을 부탁한다. 하지만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들과 똑같은 조건에서 앞서야 한다’며 거절하시는 교수님도 계셨다. 결국 그 과목은 시험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1만 3천학우가 같이 고민할 때 모든게 풀린다”

나는 학내에 보이지 않는 편견이 존재하는 만큼 시설개선보다 비장애학우들의 인식 변화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장애학우들은 대부분 장애인권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장애학우들을 위한 편의시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는 인식이 보편적이다.

작년에 장인위 활동을 잘 하지는 못했지만 성과라면 장애인 인권 문제를 알렸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좀더 큰 성과를 얻기 위한 열쇠는 우리대학 학우들의 손에 달렸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지를 기반에 둔 의지만이 장애인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장애학우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것이 장애학우만의 문제인지, 우리대학의 문제인지 고민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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