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까맣게 칠해져온 까닭일까? ‘동성애’는 흑백논리조차 적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암흑 속에 갇혀 있다. 자신을 ‘케이’로 불러달라는 한국 여성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의 상근자를 만나 여태껏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던 ‘흑’, 그 속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활보하는 거리.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예쁘게 차려입은 숙녀들은 서로 손을 잡고, 팔짱을 끼며 자연스럽게 걸어간다.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이 광경에 미국인 성적소수자 인권운동가는 “한국은 레즈비언의 천국이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어느 누구도 이 모습을 보고 ‘혹시 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레즈비언은 있을 리 없다!’는 확고한 인식 때문이다.

이렇게 동성애를 ‘흑’이라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동성애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TV드라마, 신문 등 대중매체와 초중고 10여년이 넘게 받아온 교육에서는 ‘동성애’를 언급조차 안하기 때문이다. 중ㆍ고등학교 시절, 성교육을 받는 학생들에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은 이제 ‘이성’에 눈뜰 시기이죠.” 하지만 엄연히 ‘동성’에 눈을 뜨는 학생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 중에 ‘동성애’를 느끼는 학생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교육과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사람들은 가끔씩 들려오는 ‘동성애’라는 세 글자에 몸서리친다.

그러나 동성애 자체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부정적으로나마 동성애가 알려지고 있다. 대중들에게 동성애를 알린 대폭적인 계기는 2000년 탤런트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이었다. ‘끼리끼리’ 역시 10년이란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노력한 숨은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끼리끼리’는 교과서 개정운동을 통해 ‘동성연애’를 ‘동성애’로 바꾸고, 지속적으로 교과과정에 ‘동성애’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넣도록 요구를 하고 있다.

또, 동성애자 관련 경찰 수사 과정에 그들의 인권이 제도적으로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일련의 노력들이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에서 방송하는 퀴어 드라마를 즐겨 보며 ‘게이친구가 있으면 재밌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도 무척 단편적일 뿐이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수북하게 쌓여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뭉뚱그려진 동성애자에 대한 이미지는 ‘이유 없는 혐오와 공포심’이다. 그나마 일부 ‘깨였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난 동성애자를 인정한다”고 자랑스레 말한다. 하지만 대체 누가 누구를 인정하다는 것일까?

동성애자는 누군가가 인정해줘야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은 동성애자, 그 구체적 개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아직도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시각에는 편협한 흑백논리가 가득하다.

이런 사고를 바꿔나가기에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하다. 때문에 “인권단체들은 ‘왜 좀 더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느냐’며 충고한다”고 한다. 이런 질문에 케이는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현수막을 만들어 시위에 참석하고 기자회견을 하기는 너무 무서운 사회인걸요…”라며 쓸쓸한 웃음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언젠가 동성애자에 대한 ‘흑’의 시선을 ‘백’으로 하얗게 물들 수 있는 사회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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