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2003년의 또 다른 개강. 하루 이틀 이렇게, 이렇게 잠깐이면 정말 인생이 잠깐이라는 생각이 들고야 말겠지. 또 한 편으로, 하루 이틀이 한정 없이 길고 길다면 후회라는 말도 생겨나지 않았을 테다. 언제던가..... 스물 넘고 조금 지나 나도 후회하는 일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땐 그게 무서웠다.

언젠가 연극 공연장에서 무대 뒤에 있다가 중간 중간 세트를 바꾸는 일을 도왔는데, 두 번의 공연이었다. 그런데 처음 공연은 아주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었는데, 두 번째 공연은 아주 우스운 공연이 되어 버렸다. ‘뭐가 다르기에 스텝들이 웃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중간에 내가 실수를 했었다. 내가 맡아 옮기기로 되어 있던 의자가 나중에 옮기려고 보니까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나는 조명이 켜지기 전에 얼른 나가야 되니까 그걸 찾아볼 여유도 없었다. 조금 있다 조명이 들어와 무대를 살폈더니 그 의자가 옆으로 조금 치우쳐 있어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거다.

뭐, 관객들이야 그게 실수라는 것조차 알지 못하지만 연출가는 중요한 컨셉이었다며 나를 구박했다. 어쨌거나 그건 실수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 공연을 멈추고 극장에 불을 켜고, “지금 실수가 발생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생방송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 몇 달을 고생해가며 준비하는 것이 연극이다. 부분 부분의 연습, 그리고 리허설. 모두 실수 없는 생방송을 위해서다. 그것을 위해 수많은 약속이 생긴다. 배우와 배우간에 스텝과 배우간에 스텝과 스텝간에 그리고 배우와 관객간에..... 그 어느 한 쪽이라도 약속을 어기면 실패한 공연이 되기 쉽다. 약속은 꼭 필요하고 지켜져야 하고 확인되어야 한다. 그런 다음 극장 문을 열기 전 배우와 스텝들이 모여 손을 모으고 낮은 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친다.

결국 하고픈 말은, 흔한 말로 인생도 연극과 같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더 잔인하고 치열하다. 연습과정도 없이 현재 연속 공연중이라는 것, 그러기에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수도 없이 저지른다. 그러니 하늘이 무너져라 땅이 꺼져라 인생을 걱정하는 사람도 생긴다. 그리고 하나를 살면서 또 다른 하나를 준비한다. 욕망을 채우면서 다시 욕망한다.

유창민 (일반대학원·국문학 석사2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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