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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미 '예비 비정규직'
최준민 기자 | 승인 2001.12.03 00:00

'비정규직도 인간이다! 생존권을 보장하라!' 지난 1일 있었던 노동절 집회 같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구호가 아니다. '방송 전파'를 타고 전국 수백만 가정의 브라운관에 방영된 엠비씨 수목드라마 <신입사원> 8회(4월 14일 방영)의 한 장면이다. 극중 이미옥(한가인 분)이라는 계약직 직원이 회사와 재계약을 맺지 못하게 되자 생존권을 보장하라며 1인시위를 벌이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장면이 티브이에 방영되자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고, 민주노동당 단병호 국회의원은 이에 대해 "이미옥을 정규직으로 복직시켜야 한다"고 발언해 화제가 된 것이다.

드라마 <신입사원>은 이 뿐만 아니라, 극중 구본철 부장(이기영 분)의 "비정규직 주제에 나가려면 곱게 나가야지 말야!" 등 현재 사회적 이슈인 비정규직 차별 문제가 소개돼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을까? 단지 일부의 문제를 '드라마적 요소'로 사용한 것을 두고 언론의 호들갑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은 '허구' 보다 훨씬 심각한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노동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비정규직 차별의 그 '참혹한 사례'들을 들어본다.

 

▲열악한 복지수준

먼저 비정규직에게는 복지혜택이 없다. 근로기준법에 명시한 4대 보험의 헤택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명절 상여금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원선 송파구지부장은 "상대적으로 혜택이 많은 공무원의 경우에도 비정규직은 자녀교육비나 연금은 기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비정규직에도 끼지 못하는 일용직 노동자의 경우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 경기·중부 건설노동조합 강문수씨는 "지난 한해 건설부문 일용직 노동자 중 779명이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다"라며 "건설 노동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물론 이런 악행은 비정규직이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적은 급여로 과도한 근무를 할 수 밖에 없는 비정규직

다음은 턱없이 낮은 급여수준과 과도한 근무시간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이는 '계약서에 고용기간이 명시돼 있느냐 없느냐'와 '작업복 색깔'뿐이다. 그렇지만 비정규직의 급여수준은 정규직의 53%(2004, 통계청)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낮은 급여수준은 자연히 과도한 근무시간으로 이어진다. 이랜드 노동조합 유상헌 조직실장은 "급여가 적다보니 시간외 근무를 할 수밖에 없다"며 "평일 연장근무에 회사의 강요에 의한 휴일 잔업까지 더해져 근무시간이 과도하다"고 말한다.

▲인격적인 모욕까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엇보다 인격적인 모욕을 당했을 때 가장 분노한다. "일을 잘 못하니까 아직 비정규직 아니냐", 혹은 "월급 받아먹으면서 이러면 되느냐"는 식의 발언은 '일상적으로 당하는 모욕'이란다. 유상헌 조직실장은 "사내 분위기는 아예 처음부터 비정규직을 한 층 낮은 계급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비정규직 쓰나미'는 빈부격차의 근본적 원인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런 비정규직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적은 임금에 일은 많이 하는 비정규직을 사용자 입장에서는 선호할 수밖에 없다. 있는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마당에 비정규직의 확산은 당연한 현상이다. 부당한 대우와 인격 모독까지 받아가며 묵묵히 일만 해야 하는 '파리목숨' 비정규직들이 전체 노동자 중 55.9%(2004, 통계청)에 이른다. 노동계에서 '비정규직 쓰나미'를 현재 부익부빈익빈 현상의 원인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때문에 노동계는 남녀고용평등법을 근거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동일한 노동을 설정하기 힘들다는 '귀차니즘'적 발상으로 애써 외면하고 있다.

 

재계약 문제로 노동조합의 결성이 어려운 탓에 그들의 권리를 주장할 단체조차 만들기 힘든(비정규직 조합원 13.9%, 2004, 통계청) 비정규직 노동자. 1500만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결국 우리 대학생의 관심으로 풀어나가야 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의 문제는 대학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산술적으로도 우리는 이미 절반 이상 '예비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따지고 보면 현실의 문제가 넘치고 넘쳐 허구 속 드라마로 반영된 비정규직 문제. <신입사원>의 이미옥은 우리의 미래상이다.

최준민 기자  c14120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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