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다가왔다. 미국이 이라크에 한국군 전투병 파병을 요청해 온 것이다. 세계적인 경기침체, WTO 농산물 개방문제, 북핵, 남남갈등, 태풍의 피해 등 각종 어려움에 처한 우리에게 또 다른 짐이 부과된 것이다. 전투병 파병을 두고 한국이 다시금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전투병 파병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명분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전쟁이다.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 젊은이들이 가서 헛된 피를 흘릴 필요는 없다. 미국이 주장한 대량살상무기는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고, 9.11 테러와 사담 후세인이 연계되어 있다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고 그들의 국방장관이 이미 시인했다.
전쟁은 처음부터 국제사회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주의에 입각한 미국의 독단에 의해 치뤄졌다. UN의 결의 없이 이루어진 전쟁에 평화유지군으로서 전투병이 가야한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이다.
미국과 관련된 일이 불거질 때마다 찾아오는 주인없는 국익론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있다. 현실 국제정치에서 미국의 강력함을 부인할 수 없지만 아랍 민족주의 역시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가 언제까지나 미국의 꽁무니만 따라 다니는 한국을 고운 눈으로 보지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한다.
13만 명의 미군이 들어가서도 안 되는 것은 미국의 정책에 근본적인 오류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은 하루 빨리 이라크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고 차후 문제는 UN이 중심이 된 국제사회에 맡겨야 할 것이다. 동맹국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미국이 오류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종용하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라크 평화 정착에 함께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지난 봄의 파병과는 달리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 이번 사안에 신중하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국론분열이 아닌 지혜로운 방향으로의 합의가 필요하다. 정부도 이번만큼은 국민 여론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해서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답은 간단하다. 국민 여론으로써 우리의 뜻이 무엇인지 보여 주는 것이다. 마음에 담아둔 말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하루 쯤은 책상을 물리고 광장에서 이웃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