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건대신문>의 50년을 돌아보다 - ① 창간부터 70년대까지

<건대신문>이 50주년을 맞았다. 건국대학교의 전신인 ‘조선정치학관’이 개교한지 9년 뒤, 1955년 7월 16일 창간되어 4면 제작 격주 발간으로 출발했다. 본래 <政大>라는 제호로 출발했으나 창간 2년 뒤 잠시 <政大時評>으로 제호를 변경하여 발간했다.

하지만 얼마 못가 1957년 10월 지령 제 28호부터는 다시 <政大>로 환원됐다. 우리대학이 1959년 2월 종합대학교인 건국대학교로 승격하면서 본지도 1959년 4월부터(지령46호) 제호를 <建大新報>로 변경하고 그해 2학기부터 순간(열흘 간격)으로 발행됐다. 이후 1961년 제호를 <建大新聞>으로 변경하고 발행횟수 증대 및 증면을 계속하면서 발전해왔다.

1998년에 한글제호 <건대신문>으로 확정,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는 격주 발간으로 지령 1162호까지 나왔고, 인터넷 신문 <건구기> (www.konkuki.com)를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

■ 학술지적 성격으로 출발

건대신문의 출발점인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후반까지, 신문은 학술지적 성격을 강하게 띄었다. 시대흐름을 반영한 낙농업계에 관한 학술논문들과 역사, 문학, 정치 등 다방면의 학술 흐름을 짚어냈다. [11호(1956.5.25) 미국외교의 이념과 발달과정. 이창범, 27호(1957.9.1). 학도가 본 농촌실황. 이일석, 51호(1959.6.25) 축산이 한국농업에 미치는 영향. 박병호 교수] 등의 논문이 지면의 주를 이뤘다.

■ 우리대학 소식전달에 기여

하지만 학술의 성격을 강하게 띈 것은 사실이나 ‘건대신문’인지라 우리대학의 정세와 흐름 역시 간과하지 않았다. 낙원동 구교사에서 장안벌 현 배움터로 이전해오는 과정 그리고 신설된 학부와 학과들에 대한 분석과 평가 등 우리대학의 이모저모에 대해서 다뤘다. [2호(1955.10.7) 장안동 본관 교사 맹년 3월 완공, 12호(1956.6.25) 장안동 신축교사 일부 준공, 16호(1956.11.25) 정치대학 교육연구기관 설치.] 등.

하지만 시대정세 반영이나 대학문화 흐름을 주도하는 역할은 조금 미흡한 점을 보였다. 각 지면마다 특별한 성격 없이 종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 기획이나 보도보다 논문게재 중심의 지면구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 농업정세 흐름 돋보여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반으로 달려갈수록 시대의 흐름에 따라 농업정세에 관한 글들을 지면에서 쉽게 찾아볼 수가 있다. [249호 농작물 병충해 실태조사, 323호 농촌봉사활동에 새 전기. 353호 축산대학 교육의 재발견. 이재영 교수] 등이 있다.

■ 70년대 중반, 학생사회로 눈을 돌리다

이 뿐만 아니라 70년대 중반부터는 대학에서 가장 중요한 학생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점점 두드러진다. [357호(1971.5.3) 학원 자유 외치며 가두시위. 361호(1971.6.7) 학원선거 실태분석, 592호(1979.5.23) 젊의의 숨결을 다진 축전 3일] 등 학생사회의 움직임과 학생들의 활동에 대한 기사들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정세에 관한 내용들은 빈약한 모습을 보였다. 사회정세에 큰 혼란이 왔던 79년 10월에서 11월을 넘어가는 시점, 약 1달가량 신문이 발간되지 못한 때가 있었다. 79년 10.26사태가 발생하자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지고 학교 역시 휴교령이 내려져 휴교가 단행되었던 것이다. 이후 한 달 뒤 신문은 재발간되었고 <건대신문>은 80년대를 맞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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