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봉사’라는 큰 글씨가 쓰인 대자보에 대학생 하나가 자신을 이름을 기입하며 “공부도 여행도 자원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는 광고가 유행이다. 이는 광고 속에서만 존재하는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다니고 있는 대학사회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발견된다. ‘요즘 대학생들은 부모가 뼈 빠지게 번 돈으로 술만 먹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남을 위해 봉사할 줄도 안다. 따뜻한 봉사정신. 그 인간애가 가득한 현장을 찾아가 보자.

■지근덕거리는 비가 내리고 있는 오후. 방안은 꿉꿉하고 움직이기 싫은 날

건장한 청년이 자양사회복지관에서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도시락 2개를 받아간다. ‘쯧쯧 젊은 사람이 일을 하지 밥을 얻어먹어…’ 지나가는 행인들의 따끔한 눈총을 받으며 이 청년은 빗속을 뚫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가 도착한 곳은 퀴퀴한 냄새가 배어있는 화양리의 반 지하방. 2평 남짓한 어두운 방에는 중풍으로 누워있는 50대 후반의 아저씨와 그의 어머니인 듯 한 할머니 한 분이 침울한 침묵 속에서 이 청년이 건네는 도시락을 받는다. 얼굴을 아는 사이인지 청년을 반기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그는 다시 빗속으로 뛰어간다. 빗속을 헤치고 또다시 도착한 곳, 역시 반 지하.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나오지 않는다. 집에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그러자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보일러 위에서 열쇠를 꺼내 집에 도시락을 놓고 나온다.

도시락을 옮기고 있는 이 청년은 불우한 이웃에게 도시락을 배달해주고 있는 고지훈(상대·국제무역4)군이다. “공강시간에 잠시 동안 하는 일인데요. 무슨 취재를…”이라며 취재를 부끄러워 한다. “내 생활에 피해가 없으니까 하는 일이에요”라며 겸손히 말하는 고군.

며칠 전 사회과학대에 붙어있던 대자보 하나가 기억난다. “학우들과 함께 이 활동을 하고 싶다”라는 소박한 문구가 적혀있던 대자보. 이 대자보는 고군이 붙여놓은 것이다. “여러 가지 봉사활동이 주위에 있어요. 방중에는 시간도 많으니까 많은 학우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조용히 말한다. 도시락을 받으러 올 수 없는 불우한 이웃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이번에는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우리 학우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복지관에서 <어깨동무교실>이라는 봉사활동이 있는데, 학우들이 많이 지원했어요”라며 고군은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로 간다.

■서늘한 바람이 부는 저녁, 사람들은 일을 마치고 편안한 집으로 발길을 옮긴다

허름한 건물 3층, 얇은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건물에 세월의 골이 깊게 든 어르신들과 몇몇 대학생, 중·고등 학생들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들이 한 곳에 모여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곳은 어려운 환경에서 배움을 찾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야학입니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야학’. 이 야학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다.

띵딩띵딩~ 어디선가 익숙한 종소리가 들린다. 초등학교 때 들어봄직한 익숙한 벨소리. 벨소리가 들리자 이곳 학생들이 방으로 들어간다. “자 보세요. 오늘은 집합에 대해서 배우도록 하죠.” 우리대학 물리학과 3학년 나현주 양이 검은 칠판에 분필을 대자 모두들 나양을 쳐다보며 눈빛을 반짝인다. 나무판자로 된 벽이기에 옆 교실 선생님의 목소리가 새어 나오지만, 여기에 아랑 곳할 학생들이 아니다.

“우리 야학 선생님들은 정말로 훌륭하고 잘 가르쳐.” 젊은 선생들을 입을 모아 칭찬하는 할머니들. 대학까지 가겠다는 김영님(63) 할머니의 필통은 연필로 가득하다. 학생들의 가득찬 필통이 부러웠던 모양이다. 모르는 문제는 끝까지 알고자 노력하는 최순자(59) 할머니는 복습하라는 말에 “집에서 다시 봐도 이상한 기호만 보인다”고 젊은 선생에게 투정을 부린다. 이러한 투정에 나양은 난감해하며 수줍은 미소를 보인다.

“여기는 소규모의 학교나 다름없어요. 교감 선생님, 교무일지 등 나름대로 갖출 것은 갖췄답니다”라는 오승열(축산대·축산경영2)군의 얼굴에 뿌듯한 보람이 엿보인다.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했는데 과외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보람을 느껴요”라고 말하는 오군.

그런데 아까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 있었다. 구석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학생. 알고 보니 우리대학 문과대 1학년이란다. 이름은 유승희(문과대·인문학부1)양. 유양은 미래 야학선생님으로 “일정 기간동안 수업참관을 해야 선생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선배 선생님들의 수업을 보며 배우는 중”이라고 한다. “수업참관을 하고 있으면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을 한다는 유양. “수업참관을 안 해도 수업을 할 수 있지 않냐”는 질문에 “수업참관을 하는 것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 공부를 하고자 모인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말하는 유양. “야학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 배우는 것이 더 많아요”라는 유양의 얼굴은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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