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오늘 이 글을 통해 비밀을 하나 밝힐까 한다. 일종의 고백이다. 이 비밀이라는 것이 사실 필자의 개인 신상에 관한 것이고, 또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짧지 않은 대학생활 동안 언젠가 이렇게 공개적인 자리에서 말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

필자는 보수다. 흔히들 얘기하는 진보, 진보주의자의 상대개념인 보수, 보수주의자다. 좀더 정확히 얘기하면 중도보수가 필자의 실체인 것이다. 가장 진보적이라는 세대에 속하며, 아무리 뻥튀기를 해도 부르주아가 될 수 없는 부모를 두었으며, 대학언론사의 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사회현실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현존하는 모순들의 해결방법이 극단적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는 한동안 이러한 필자의 실체를 쉽게 얘기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대학생은 진보적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이나, 대학신문사 기자는 진보적이어야 한다는 전통과 그에 따른 기대심리에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또 필자만이 정상(?)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렇게 필자 스스로의 보수적 성향을 확인하고 있을 무렵 필자는 극도의 답답함을 느꼈다.

왜 이 대학이라는 공간에는 보수적인 학생이 없는 것일까? 아니 왜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대학생사회에는 보수적인 행위자는 필요 없기 때문일까? 과연 건국대학교 학생 중에 필자만이 보수적인 성향을 가졌을까?

대학사회의 진보세력이 우리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한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나, 왜 민주화 시대에 우리 건국대학교의 학생사회는 아직도 정체되어 있는 느낌일까? 필자는 우리대학 학생들이 필자만 빼놓고, 모두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친구도 여전히 우리대학에 다니고 있으며, 총학생회의 게시판에는 ‘반김일성, 친미’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필자는 이들이 적어도 ‘깡통’내지는 ‘알바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익명 게시판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회창씨를 지지하는 자신을 떳떳이 밝히지 못할까?

필자는 중도보수답게(?) 그 책임을 적어도 대학사회에서는 기득권자인 진보세력에게 떠넘기고 싶지는 않다. 이는 일면 지나치게 왼쪽으로 이동해 있는 한국의 정치스펙트럼의 중심에도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또 책임이 어디에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이다.

민주주의 사회 그리고 최소한 대학사회의 미덕은 다양성 존중과 자율성일 게다. 아니 그것은 필수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제 우리대학에서도 선거철에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대자보가 나붙고, 신자유주의적 대학정책을 지지하는 총학생회 후보가 등장하고, 그것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가 오지 않았을까?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는 문제를 떠나 다양성 존중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길이 아닐까? 그것이 지난 80년대를 이 나라의 민주화에 바친 우리 선배들에 대한 진정한 보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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