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인서점 심범섭 대표가 말하는 인문사회과학의 현주소

대표, 선생님 등 세상 어떤 호칭보다 '아저씨'란 표현이 좋다는 심범섭 대표. 심 대표는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청년들과 동고동락해 오며 결혼주례만 해도 600쌍 넘게 설 정도로 청년들에게 인기가 많다. 서글서글한 인상은 그 누구라도 '아버님'이란 표현이 저절로 나오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인 건국대 앞 인서점이 96년에 이어 두 번째 위기에 처했다. 이번에는 건물주에 의해 강제철거를 당하는 수난을 겪은 것이다. 심대표는 이러한 상황에 처하며 "책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심범섭 대표는 인문학의 위기는 곧 미래의 불안이라고 진단하였다. © <유뉴스> 김명희 기자

현재 인서점의 위기는 우리사회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로 통하고 있으며, 건국대 동문들과 재학생들은 이를 안타까워하며 인서점 살리기 운동에 발 벗고 나섰다. 

유뉴스는 심범섭 대표를 통해 인서점을 통해 본 사회과학의 위기와 전망 그리고 인서점의 재건방향에 대해 들어보았다.

△요즘 근황은?
지난 9월 13일(화) 서점 강제철거 이후 중랑구 근처에 살고 있는 딸래집을 돌아다니며 손주들과 놀아주고 있다. 어느 날에는 막내딸이 심심해 할 아버지가 생각났는지 배추씨를 사가지고 와서 집 옥상에 씨를 뿌렸더니 이제는 제법 잘 자라고 있다. 40포기 정도 되는 것 같아 올 겨울 김장거리는 충분히 될 것 같다.(웃음)

지난 주 일요일은 아들, 딸, 사위 등 12명 가족들이 강원도 홍천에 밤줍기 여행을 다녀왔다. 최근 며칠동안은 언론사 인터뷰 요청이 많았다.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운 마음이다. 

△인서점이 강제철거 되었을 때 심정은 어떠했는가?
나는 지금의 상황이 돈이 없는 어려움으로 치부하고 싶지 않다. 실은 우리 가족들은 1년 전부터 이미 마음정리를 했다. 그때 자식들과 함께 앉아 온갖 어려움은 있었지만 '우리가 인서점을 통해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느냐'며 인서점이 문을 닫게 되더라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실제로 고통스러웠던 것은 내가 지난 23년간 서점을 운영하며 수십번 압수수색이나 잡혀간 것보다 '책들이 무슨 죄냐'라는 것이었다.
책들에게 정말 미안했다. 그 책들은 역사를 사랑했던 죄밖에 없는데 결국 콘테이너에 가둬지는 것을 보며 눈물이 났다. 그때는 청년건대보다 책들에게 더 미안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과학서점 인서점 심범섭 대표 © <유뉴스> 김명희 기자
△건국대와 인연을 맺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가?
내 삶은 청년시절부터 지금까지 청년들과 동고동락해 온 셈이다. 건국대와 인연은 내가 강동구에 있는 ‘길동’이라는 곳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중 서점에 자주 드나들었던 학생들의 손에 의해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청년건대를 중심으로 인서점 재건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는데.
96년 인서점이 재정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나는 그것을 단순한 자본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당시 인서점은 96년 2월 이전하면서 서점 명칭을 '사회과학 인서점'에서 '문화과학마당 인서점'으로 변경했다. 이와 더불어 나는 이때부터 '서울지역 내 인문사회과학모임'을 실질적으로 주도하기도 했다.

당시 고민의 결론은 더이상 사회과학이 아닌 문화과학의 도구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때는 출판운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우리들이 역사의 두 걸음을 앞서가는 지적성찰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이러한 변화가 없으면 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한 절박함이 있었다. 지금도 그 연장선에서 바라보고 있다.    

△인서점의 상황을 두고 '인문사회과학의 붕괴'로 인식하고 있다. 인문사회과학의 위기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사실 새 천년에 들어서서 '문화'가 중심가치로 떠오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문화라는 큰 틀속 중심에 지식이 서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것이 깨진데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 있다. 말하자면 나는 2000년도에 들어서서 인문사회과학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우리의 진단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문화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하면 당연히 책을 읽어야 할진대 그렇지 않은 현실이 그것을 반증했다.

새 천년에 들어와 청년들, 대학생, 지식인, 신세대들은 지식을 추구하는 문화보다 기호, 이미지, 영상 등 감각을 통해 문화를 향유하고 있다.

▲인서점 강제철거 전 모습 © <유뉴스> 김명희 기자

요즘 사람들은 옷을 입어도 브랜드, 가치를 따지고 헤어스타일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편한 것을 찾고, 글을 써도 감각적인 것을 추구한다. 인터넷 문화를 보더라도 지식을 담은 글은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사적인 것도 만화, 영상물, 이미지를 통해 영향을 주고 있는 현실이다. 이는 인터넷 문화와 연관성이 크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이라 해도 세대들을 탓할 수만은 없는 문제이다. 문화의 시대 지적생산을 통한 세계변화 측면에서 현실은 지적생산도 못하고 있지만 생산된 것도 읽지 않는 상황인 것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오면 민주주의 이전 관련된 것은 읽지 않듯 이 부분에는 진보적 지식인이 더 이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인서점이 재건되더라도 인서점 혼자서는 해결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보지만 나는 그 대안을 '문화사랑방'을 통해 찾고자 한다.

△우리시대 사회과학서점의 존재의 이유는. 
나는 위기가 인식되었다면 위기의 근본원인에 대해 정확히 읽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감성적으로 느끼는 수준에서는 대안이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안도 우리가 인서점의 상황을 인문학의 위기로, 나아가 역사진단의 위기로 보는 것처럼 지적성찰을 통해 원인을 찾아야 한다.
 
우선 인서점이 재건되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지금껏 대응하지 못한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는 곧 청년정신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청년정신은 역사적 질환을 진단하고 치유할 수 있는 실천적 작업이며, 그 실천적 작업이란 저항운동이 크게 훼손되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를 사회가 방관한다면 안 된다고 보기에 많은 사람들이 재건운동에 참여한다고 보여 진다.

또한, 감각의 시대에서 생각의 시대로 바꿔야 한다. 무릇 현실에 안주하려 한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 책이란 미래를 설계하는 사람이 자신이 만든 설계의 바탕을 더욱 튼튼히 하기 위해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감각적인 삶은 머리 속으로 들어가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피부, 귀 등 외부와 의 접촉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적인 삶의 특징은 소비시대의 특징이며, 이러한 사회는 현실에 안주하기 때문에 책을 읽지 않게 된다.

그러나 곰곰이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에 안주해 살아가면서도 불안해하고 있음을 발견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불안을 깨우쳐 주는 지식인이 없기 때문에 이것이 바로 앞서 언급한 인문학 위기의 본질이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는 곧 미래의 불안이다. 우리가 요즘 사회 흐름을 보면 앞으로 5~6년 후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가 다니지 않을까 할 정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나는 87년 6월 항쟁이 만약 실패했다면, 단언하건데 아직도 철의 장벽에 막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사회적 큰 변화는 바로 87년 6월 항쟁이 미래를 확보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회과학의 역사적 힘과 실천은 역사적 변화를 가져온다. 인문사회과학의 위기는 우리의 희망을 꺾어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불안을 일깨워주며 미래를 고민할 수밖에 없게 만들어주는 것이 진보적 지식인의 역할이자, 문화사랑방의 역할이다.

▲강제철거된 후 공사중이다 © <유뉴스> 김명희 기자

△인문사회과학과 문화과학은 어떻게 다른가?
80년대 사회과학이란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이론으로서 사회주의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그러나 순수한 의미의 사회과학은 경제, 통계 등 이념이다.

인문사회과학이라는 표현은 90년대 후반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사회과학이 사회주의를 띠었기 때문에 문화, 역사, 철학을 사회과학과 결합시켜 이른바 이념성을 죽인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하다보니 지금 순수한 사회과학과 이념서적들이 혼재되어 사용되고 있는 측면이 크다. 

인문사회과학이라는 것은 사회과학의 정치적 성향과 인문학의 문화적 측면을 억지로 붙인 것이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인문사회과학보다 문화과학이라는 표현이 옳다고 본다.

△인서점 재건방향을 '문화사랑방'에서 찾고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상인가? 
한마디로 문화과학이라는 서점 기능을 넘어 온-오프라인 영역에서 '문화사랑방'이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인간다움의 문화체험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관계를 통한 문화적 수술을 하자는 것이다.

형태는 '인사랑 출자조합'(가칭)을 설립하여 50여명의 조합원이 인서점 운영의 중심이 되고 회원들에게 여러 가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인터넷 및 핸드폰을 통해 회원들에게 책에 대한 정보를 수시로 제공하고, 회원들이 평소 살아가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책들을 대행하며 회원이 평생 동안 성장하고 행복을 만들어 가는데 필요한 정보 등을 주는 것이다.

회원들은 일정 금액을 일정 기간동안 관계를 맺고 서점은 회원 한명 한명을 엄청난 노력으로 관리한다. 
이를 위해서는 서점 운영자들이 항상 정직하고 솔직하게 대해야 하며, 세계를 읽고 전달하려면 독자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인식도 있어야 한다.

또한, 오프라인 상에서는 가끔 지식인들을 초청해 토론장을 마련해 토론된 것을 온라인을 통해 지속적으로 축적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서점은 회원들에게 지적고향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나는 4~5년 전부터 '천지학당(인서점과 더불어 세상에 대한 씨앗심기라는 뜻)'을 운영하며 지금의 386세대들의 2세들에게 뭔가 인간 세상에 씨앗을 심어줘야 한다는 뜻으로 강화도 마니산 등지에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가는 행사를 가져왔다. 앞으로 인서점이 가족들에게는 체험 및 학습도움의 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심범섭 대표는 인문학의 위기는 곧 미래의 불안이라고 진단하였다 © <유뉴스> 김명희 기자

△인서점의 모든 권한을 인사랑 출자조합에 넘긴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재건 후 '아저씨'를 서점에서 볼 수 없는 건 아닌지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나는 인서점이 95년 위기에 처해 있다가 여러 사람들의 모금으로 다시 살아난 시점부터  인서점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인서점이 또다시 재건한다면 더더욱 내 것이 아니다. 그때부터는 다시 형성된 주체들의 것이다.

그러나 청년건대를 비롯한 동문들이 '아저씨가 없는 인서점은 생각할 수 없다'며 혹시 떠나지 않는가 걱정하는데 그것은 아니다.

새로 재건된 인서점은 출자조합에서 임명한 사람이 운영을 책임지게 될 것이고 나는 인서점의 운명과 함께 하며 문화사랑방을 운영하는데 힘을 보탤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인서점 재건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인서점을 살리는 운동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미래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사람들이고, 인서점을 통해 새롭게 희망을 간직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그들에게 '면목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동지로 가는 마음으로 함께 어깨 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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