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대 비정규직 한 분이 자살을 했다. 그 자살 이유야 어쨌건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비정규직 교수의 열악한 삶일 수도 있다(사실 이 분의 죽음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말한다는 것은 그 분을 욕되게 하는 일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언론 매체들은 이 일을 가지고 시간강사(사실 시간강사라는 말은 대학 교육을 담당하는 한 주체로서, 그리고 동일 노동이라는 측면에서 적절한 말이 아니다. 비정규직 교수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처우를 개선해야 하느니 어쩌니 말들이 많다(그런데 그 분이 서울대 출신이 아니라 지방대 출신이거나, 또는 일반 노동자였더라면, 언론이 이렇게 냄비 끓는 듯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실 이 문제는 훨씬 오래 전부터 있어 왔던 문제이다.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이 땅에 대학이 세워지면서부터 생겨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비정규직 교수 문제는 크게 몇 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다.

첫째, 비정규직 교수의 임금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도 힘들만큼 열악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교수의 한달 임금은 평균 8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것은 정규직 교수와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차이가 나는 수준이다.

둘째, 비정규직 교수의 신분이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즉 대부분의 비정규직 교수는 ‘교원 노동자로서의 법적 신분’이 보장되어 있지 않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 7조에 따르면 시간 강사를 단지 “교육 과정의 운영상 필요한 자”로서 일용 잡급직의 한 형태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하여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4대 사회 보장 보험 적용 기준에서도 빠져 있다.

세번째는 이러한 것들로부터 발생하는 문제이다. 즉 학생들의 학습권이 엄청나게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 교육의 절반 이상(평균치 53% 정도)을 담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교수들이 자신의 생존 문제에 얽매이게 될 때, 학생들에게 거의 신경을 쓰지 못하게 됨으로써 학생들의 의문을 제때 풀어주지 못하여, 학생들의 학습의욕을 상당히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대학 교육의 한 주체이면서도 능동적으로 대학 교육에 참여하지 못하고 강의만 할 뿐, 교육 과정을 설계하고 입안하는 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어 있으며, 학생 지도와 상담을 사실상 할 필요가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학 교육을 담당하는 한 사람으로서 상당히 가슴 아픈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신분상의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연구와 교육에 집중하는 것이 힘들고 그리하여 보다 나은 교육이 불가능해짐으로써 전반적으로 대학 교육의 질이 저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곧 어처구니없게도 이 사회의 모토라고 할 수 있는 ‘경쟁력 강화’에 위배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것은 교육 개방이 이루어지면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뜻있는 비정규직 교수들은 ‘한국비정규직교수 노동조합’을 만들어 힘을 모으고 있다. 비정규직의 권익 옹호와 대학 교육의 민주화, 학문의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역사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누군가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쟁취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다.

우리의 권리를 스스로 쟁취하기 위한 어렵고 힘든 길을 가는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정규직 교수님들의 따뜻한 격려와 연대의 지지를 간곡하게 바란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대체로 정규직 교수님들의 후학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 여러분들의 따뜻한 격려와 힘찬 연대의 지지를 너무나도 간절히 바란다. 학생 여러분들은 대학 교육의 다른 한 주체이자, 앞으로 노동자가 될 소중한 동지들이기 때문이다.

k대 L모 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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