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부터 19일까지 아펙이 열린 부산. 국제적인 행사가 열리는 부산에 여러 나라의 유명한 정상들만 모인 것은 아니었다. 부산에는 아펙에 반대하는 수많은 민중이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왜 부산까지 내려가 ‘반부시’ ‘반아펙’을 외쳤던 것일까? 기자는 부산을 찾아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본다. - 편집자 풀이-

▲ © 추송이 기자

지난 17일 학교를 나와 부산역에 도착한 시각은 늦은 7시. 부산역을 빠져나와 부산의 중심가인 서면으로 향했다. ‘전쟁과 빈곤을 확대하는 아펙반대 문화제’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의 번화가인 이곳은 “자유무역은 지옥에나 가라” “전쟁과 빈곤에 반대한다”라는 현수막들로 술렁거렸고, 많은 민중이 반아펙을 외치고 있었다.

■ 우리문화 지켜내자

반아펙 문화제가 열리는 서면에서는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자신의 소속을 알리는 깃발들을 드높이 세우고 있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노동자의 힘 등 노동단체의 깃발들이 대다수인 가운데 ‘스크린쿼터문화연대’라는 깃발도 볼 수 있었다. 문화운동을 하는 이들도 ‘반아펙’을 외치기 위해 부산을 찾은 것이다.

스크린쿼터문화연대 김평화 정책국장은 “미국이 FTA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스크린쿼터 축소 내지는 폐지를 내놓았다”며 “스크린쿼터 폐지는 문화의 다양성을 억압하며 자국의 문화정체성마저 지키지 못하게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문화다양성에 관한 문제는 유네스코에서도 인정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문화 간 이해증진’이라는 명목 아래 이를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이다. 스크린쿼터는 단순히 영화인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김평화 정책국장은 “93년 미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스크린쿼터를 폐지한 멕시코는 현재 1년에 단 한편의 자국영화도 제작하기 힘든 실정”이라고 한다.

스크린쿼터가 무너지면 모든 방송시장과 영상산업에서 우리의 문화를 지킬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인지, 문화연대의 반아펙 외침은 더욱 뜨겁게 메아리쳤다.

■ 여성의 빈곤화 가속시키는 아펙

문화제가 한창 열기를 달구는 가운에 유독 여자들만 모여 있는 현장이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부시 반대” “아펙 반대”를 외치는 이들에 가까이 간 기자는 이들이 청소용역업체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임을 알게 되었다. 50~60대의 여성들이 추운 날씨에도 반아펙문화제를 찾은 이유는 여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드는 아펙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 © 추송이 기자

민주노총여성연맹 이찬배 여성위원은 “아펙에서 여성기업인 육성을 장려하는 정책을 편다고 하지만 이것은 현실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한다. 이찬배 여성위원은 “여성이 사장인 경우 (사업상의) 가산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제 경영은 남편이 하면서 이름만 아내로 하는 경우가 70~80%에 이른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결국 아펙에서 ‘여성참여 강화’라는 의제는 여성을 위한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공감하는 사람들은 비단 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여성해방’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큰 현수막 옆에는 여성운동가들이 자료집을 나눠주며 반아펙에 함께 하고 있었다. ‘세계화반대여성해방’의 정주연씨는 아펙에 속하는 많은 나라의 여성들이 최저임금을 받고 있음을 지적하며 “세계화는 여성의 빈곤화만 가속화 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주연씨는 “이번 회담에서 여성기업인을 육성한다고 하지만, 주류 여성들을 남성중심의 경제구도에 끼어맞추는 식일 뿐, 근본적인 여성의 빈곤화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결국, 여성의 빈곤문제는 세계화와 연결되는 부분이기에 이들은 여성해방을 외치며 아펙에도 강력히 반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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