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민의 저항

한편, 아펙 반대를 어느 누구보다 절실히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쌀수입 개방을 위한 비준안을 저지하고 있는 전국의 350만 농민들이다. 문화제가 열린 다음날, 농민대회가 열리는 부산 토곡에서는 많은 농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WTO 끝장내자”, “쌀협상 국회비준을 저지하자”라는 구호를 외치며 전국 방방곡곡에서 부산으로 몰려들었다. 12월 홍콩 WTO각료회담의 전초전이 될 아펙에 반대하기 위함이다.

▲ © 추송이 기자

전국농민회총연맹 문경식 의장은 “정부는 농산물수입 자유화를 위해 쌀 비준안이나 DDA 협상을 조속히 추진하고 있다”며 “이것은 우리 농민들을 빈민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아니냐”고 분개했다. 국내 농산물 시장에 초국적 자본이 들어오게 된다면, 경쟁력이 없는 농업현실에 비추어 보아 큰 파장이 올 것이라는 것이다.

집회 현장에서는 17일 “쌀개방 안돼, 우리농민 다죽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한 고 오추옥 농민의 추모식이 열리고 있었다. 절박한 삶을 살아가는 농민들은 결국 죽음이라는 극단의 선택을 해버린 것이다.

부산농민회 김해근 씨는 “농민 90% 이상이 농가부채를 안고 있다”며 “농가부채 때문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국민의 정부라 자칭하는 노무현 정권이 농업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농민들을 죽이려는 것이다”고 현 정부에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1천년 동안 이 땅을 지키고 있는 우리 농민들은 이제 ‘개방’이라는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휘청거리고 있다. 20%가 넘게 떨어진 쌀가격과 쌓여만 가는 농가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이 나라의 국민이자 농민이기도 한 사람들...이들을 더욱 굶주리게 하는 아펙에 반대하기 위한 몸부림은 그렇게 부산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노동자의 재앙을 불러오는 아펙

무엇보다 반아펙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무역자유화’라는 이름 아래 자본가들의 배만 채워주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에 있다. 문화제가 열린 다음날, 반아펙을 외치는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아펙을 저지하기 위해 회담이 열리는 벡스코로 향했다.

민주노동당 유민희 당원은 “아펙에서는 2010년에 모든 국가들의 무역자유화를 이룰 것이라고 한다”고 말하며 “이는 경쟁력 없는 국내 산업의 붕괴를 가져와 그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돌아온다”고 지적한다. 무역자유화라는 것은 결국 힘없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시내버스 기사였던 박한영씨. “근로기준법에 벗어난 노동시간을 강요당해 임금문제를 항의했다가 해고당했다”는 그는 자신의 억욱함을 토로하며 “일선 현장에서는 부당한 해고와 노동착취 등의 노동자 억압이 빈번하다”고 전한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노동자를 더욱 압박하는 아펙에 반대하는 박한영씨의 모습은 더욱 힘이 넘치는 것 같다.

또한 ‘노동자의 힘’의 회원 이강철 씨도 “아펙은 결국 미국 패권주의 전략인 신자유주의의 놀음판이다”라고 비난하며 아펙에 반대하고 있었다. “힘없는 자들을 법과 제도로 묶어두고 자신들의 세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지배세력의 의도일 뿐인 아펙에 반대한다”는 이강철씨는 힘없는 자들도 잘살수 있는 세상을 위해 아펙 저지를 외치며 벡스코로 발길을 옮겼다.

부산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아펙에 반대하며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농민, 노동자, 여성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까지 모여 아펙 반대를 외쳤던 부산. 이들은 모두 우리의 삶,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부산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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