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으로 대규모 원정 투쟁을 가야 했을 만큼 신자유주의 농정 정책과 WTO에 대한 농민들의 분노는 크다. 농민들의 분노는 지난 10년 동안 차곡차곡 쌓여 왔다. 지난 10년 간 농산물 수입이 두 배 느는 동안 농가부채는 네 배나 증가했다.

농민 생존권 파탄 원인은 단지 쌀 수입 개방에만 있지는 않다. 사실상 한국 역대 정부들의 농업 정책의 핵심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농업 멸시다. 노무현 정부는 WTO의 농업 보조금 축소 규정(감축대상 보조금)에 따라야 한다면서 추곡수매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도 밀어 붙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농업은 공업보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생산성이 떨어진다 해서 농업을 아예 고사하도록 내버려 두자는 것은 농업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해법이다.

농민들에 대한 지원을 통해 농심을 달래왔다는 것도 완전한 거짓말이다. 1992년부터 1997년까지 모두 42조 7천억원이 농업 지원을 위해 쓰였다며 우익 언론이 집중포화를 퍼부은 적이 있었지만 그 돈 가운데 농민들한테 직접 지원된 금액은 고작 2조5천억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연구 개발비 등으로 들어갔다.

한국 정부가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농민들한테 들어간 돈이라고 주장하는 57조원 가운데 실제 농민들한테 지원된 돈도 겨우 2조 9천억원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는 한ㆍ칠레 자유무역협정이 통과되기 직전 농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하자, 10년 동안 1백19조원을 지원하겠다며 농민들한테 냉정하게 등을 돌린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해 왔다. 그러나 119조 투융자 지원계획 중 80퍼센트에 해당하는 96조원은 이미 편성되어 있는 농림예산이며, 실제 별도 기금을 출연하여 지원하는 액수는 23조원에 불과하다. 농림부 예산을 농민들에 대한 지원금이라고 둘러댄 것이다.

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농민들이 대거 희생자로 전락하는 양상은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단지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만은 아니다. 이것은 미국 사회에서도 나타난 양상이었다. 지난 50년간 약 400만개의 미국 농장이 파산했다. 50년 동안 매일 2백개가 넘는 농장이 사라진 셈이다. 1987년부터 1992년 사이에 매년 3만 8천5백개 이상의 자영 농장이 사라지는 동안 미국 신문들은 자살, 배우자 학대, 파산, 식량 배급품을 신청한 농부들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찼다(<위대한 전환> 중 10장 ‘세계 식량 공급의 통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고 전용철, 홍덕표 농민의 빈소 © 김봉현 기자

현재 한국의 농업과 수입개방 확대는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비합리성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쌀을 생산할수록 농민들은 더 가난해지고 창고에 쌀이 가득 쌓여 가지만 기아 인구는 늘어난다. 전 세계에서 8억명이 굶주리고 있고 해마다 3천6백만명이 기아로 죽어가고 있으며 한 시간에 4천명꼴로 굶고 있다. 반면, 선진국 내에서는 과잉 생산된 농산물이 넘쳐 난다.

미국 정부는 저곡가 정책을 위해 최대한 공급을 늘리고 있고 공급을 늘릴수록 가격은 떨어진다. 그렇게 늘어난 잉여 농산물을 처리하기 위해 미국은 세계 각국에 시장개방 압력을 가하고, 그것이 한국에는 쌀 시장 개방 압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불합리를 위해 존재하는 기구 WTO는 농민들에 대한 농업 보조금을 감축하는 것을 계속 강요하고 있다. WTO의 규정대로라면 농업 보조금을 더 줄이고 시장 규제 장치들을 계속 없애야 한다.

심지어 WTO의 ‘제3국 원조 금지 규정’은 수입쌀을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는 북한에 지원하라는 전농의 요구를 노무현 정부가 묵살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반면, WTO의 농업보조금 감축에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위선적인 이중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예외 규정을 만들어 자국에서는 농업 보조금을 유지하고 있다. 강대국들의 농업 보조금은 WTO가 출범한 1995년 1천8백20억달러에서 1997년 2천8백억달러, 1998년에는 3천6백20억달러로 엄청나게 늘었다. 2002년 유럽연합의 농업 보조금은 부유한 나라 전체가 가난한 나라에 지원해 준 원조 총액의 6배에 이른다. 지난 7월 말 WTO 일반이사회에서도 미국과 유럽연합은 개도국들에게 보조금 감축을 요구하면서 자신들은 블루박스라는 항목의 농업 보조를 유지했다.

이런 강대국들의 횡포는 WTO라는 괴물의 탄생과도 관련이 있다. 농업은 WTO가 생겨나기 전에는 WTO 전신인 GATT의 권한 밖이었다. 미국은 자국산 설탕과 유제품 및 기타 농산물을 계속 보호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면 GATT에서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자 문제는 달라졌다. 유럽이 농산물 수출국이 됐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미국 사이의 경쟁이 격화됐다. 그러나 양측이 서로 으르렁거리면서도 합의했던 한 가지 돌파구가 있었다. 새로운 농산물 수출 시장을 뚫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과 유럽연합의 농업 보조금은 금지하지 않는다는 협정(일명 영빈관 협정)을 맺었다.

더 중요한 것은 농업 보조금으로 모든 농민이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미국의 농업무역정책연구소에 따르면 북미 농민들은 특정 상품 가격 1달러당 겨우 4센트(1센트=약10원)를 번다. 그러나 정부는 1달러당 20센트, 소매상은 21센트, 중개인과 거래업체, 선적회사 등이 29센트를 번다. 옥수수 씨리얼 한 상자가 슈퍼마켓에서 3달러에 팔린다. 그 중 농부한테 돌아가는 몫은 2센트에 불과하다.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단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것은 아니다. 농업에도 계급이 있다. 이것은 브라질과 인도 같은 G20 국가에서도 마찬가지다. 인도의 트리베니, 발람푸르, 치니 밀즈 같은 곡물 다국적기업들과 브라질의 1퍼센트도 안 되는 대농장주들은 관세 감축 같은 시장규제조치 해제 덕분에 더 많은 농산물들을 팔아 이득을 챙기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가난한 농민들은 도산하고 파산한다.

이번 WTO 각료회의에서도 브라질과 인도 정부는 가난한 소농들을 배신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괴물 WTO와 신자유주의적 농정 개혁에 대한 분노와 투쟁은 내년 3월 제네바에서 열릴 WTO 각료회의에서 다시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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