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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쌀이에요”
홍미진 기자 | 승인 2002.11.11 00:00

사랑하는 여러분 보세요.

기억나나요? 약간은 차가운 바람을 느끼며 춤추던 황금색 물결을요. 탁 트인 파란 하늘 아래 여러 가닥의 벼이삭들이 비껴 누울 때 느꼈던 정감을요. 저는 농부 아빠가 키운 쌀이에요. 버스의 창을 통해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면 전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곤 했죠. 제가 살짝 고개 숙일 때마다 지긋이 웃음 짓는 사람들을 볼 때면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요. 하루 3번 꼭꼭 만나고, 가을이면 노란 옷으로 바꿔 입은 절 보며 지친 현실을 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잊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던 사람들의 얼굴…

그치만 오늘은 화 좀 내야겠어요. 저 멀리 있던 흰 피부의 사람들이 절 쫓으려 하는데, 정부를 비롯해 사람들은 왜 절 지킬 생각을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대통령이 그 전에 뭐라고 했는지 아나요?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세계 흐름이라고 했대요. 저한테는 젤루 큰 아빤데 이렇게 막내를 버려도 되는 건가요? 게다가 여러분조차 ‘같은 밥인데 싸게 먹을 수 있으니까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죠? 여러분이 이 땅을 사랑하는 만큼 저도 여기가 좋아요. 내쫓기기 싫다고요∼ 난 마음의 준비도 안됐는데, 정부는 벌써 다른 나라 쌀을 들여오기위해 제 몸값을 낮추려하고 있어요.

작년에 각국 대통령들이 카타르 도하에 모여 농산물을 자유롭게 사고 팔 수 있게 하자고 약속을 했거든요. 이게 바로 우리 부모님이 그렇게 화를 내시는 ‘제 4차 WTO각료회의’랍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내년 3월까지 관세는 얼마나 줄일지, 외국 상품들을 얼마나 들일지, 자국 기업을 돕던 건 어느 정도로 줄일 건지 등을 결정해야 해요. 그리고 이 확정된 세부원칙을 어떻게 실천할 건지를 합의하고 2005년 새해 첫날에 협상종결도장을 찍을 거래요. 굴러온 쌀이 박힌 쌀 뽑는다니까요.

그런데, 농촌경제연구원 아저씨가 그러는데, 제 가격이 떨어지면 우리집 소득이 42%나 줄어들 거래요. 당연하죠. 제가 우리 집 수입의 반을 벌고있으니까요. 그런 제 가치가 매년 13.1%씩 낮아질텐데, 우리 집이 비틀거리지 않고 배기나요. 안 그래도 여러분의 사랑이 식어서 절 찾질 않아 가계가 기울고 있는데, 그나마 미곡종합처리장(RPC)이 저를 꾸준히 사주기 때문에 집안을 겨우 지탱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믿었던 RPC도 요즘 휘청거려요. 계속되는 경영난으로 재고가 쌓이고 있거든요. 결국 망할 위기에 놓인 곳들도 있어요. 그 속에서 우리 집은 빚 때문에 길에 나앉게 생겼어요. 게다가 이웃집은 빚이 너무 많아서 재산이 경매처분 당했다니까요. 하도 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농림부의 아저씨들이 방법을 제시했어요. 아빠가 농사 짓는 평 수 만큼 일정한 봉급을 준다는 거죠. 바로 ‘소득 안정 직불제’예요. 우리 가족은 잔뜩 기대했죠. 그런데 줄어든 우리 집 소득을 대신해주기엔 정부가 준 보조금은 터무니없이 적어요. 보조금이 줄어든 소득의 1/5에 불과하니까요. 게다가 그 쥐꼬리만한 보조금조차 날로 줄어드니 아빠와 아빠 친구들은 ‘생색내기식 직불제’라고 막 화를 내시고 있어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집 경제사정만이 아니에요. 다른 나라 쌀에만 의존하다가 쌀을 공급하는 나라가 갑자기 쌀을 비싸게 팔려고 한다면 어떡하죠? ‘쌀 안준다!’ 하면서 이것저것 참견하고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떡해요? 여러분은 ‘뭐 그 정도야, 딴 거 먹으면 되지’ 하겠지만 막상 제가 없으면 일주일도 못 버틸 걸요. 일주일을 슈크림에 빵만 먹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살은 살대로 찌죠, 맛은 느끼해 죽겠죠. 그렇다고 빵에 김치 먹을 수도 없잖아요. 게다가 빵을 먹는다 하더라도, 필요한 밀은 어떻게 할 거고요?

우리나라에는 얼마 나지도 않는데. 저번 80년 흉작 때, 다국적 곡물기업이 쌀값을 평상시의 3배나 올렸던 거 기억하세요? 옆 나라 일본도 94년에 우리랑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요. 그럼 그 비싼 쌀을 누가 사요? 다 일반 서민들이 사는 거죠. 그땐 제가 없으니, 울며 겨자먹기로 사먹어야 한다고요. 먹는 거랑 관련된 게 제일 서러운데. 게다가 쌀을 다른 나라에만 의존하면 나중에는 신선한 쌀을 못 먹을지도 모른다고요. 아쉬운 건 우린데 누가 일일이 깨끗하게 보관처리해서 주겠어요. 대충 그냥 퍼다주는 거죠.

게다가 제가 무너지면 농사를 포기한 부모님들은 모두 도시로 이사할 거고, 농민들의 대거 도시이주로 치러야할 비용은 지금 농촌을 지원할 때 드는 비용보다 10배나 더 들 거래요.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한 지역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모여있어서 빠글빠글한데, 더 모인다고 생각해보세요.

어휴∼. 제가 쫓겨나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먹는 문제 뿐 아니라 다른 피해들도 와요. 제가 서있는 이 논자리에 모아둔 물이 2773톤이나 되는 거 아세요? 이 물량은 춘천 댐 물의 18.5배나 된다고요. 이 정도의 물이 갑자기 없어지면 가뭄이나 홍수 때 피해가 지금의 몇 배가 될 지 모르죠. 게다가 전 지하수도 만들 줄 알아요. 제가 만드는 지하수가 소양강 다목적 댐 저수량(19억톤)의 2.9배에 해당하는 거 모르셨죠? 그 양은 여러분 모두가 1년간 사용하는 수돗물의 79%나 되는 양이예요.

생각보다 제가 하는 일이 많죠? 그밖에도 여름철의 대기 냉각, 토양 유실 방지, 대기 정화, 수질 정화에도 크∼게 한 몫 한다구요. 이제 제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겠죠? 그래서 올해부터는 아빠가 직접 나서서 저를 지키기로 하셨대요.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서 마을 이장님까지 모두 함께 나서서 WTO 쌀 개방 반대 투쟁을 할거래요 우리 가족뿐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 우리 민족의 밥상에 올려질 따뜻하고 기름진 저를 지키기 위해서요. 그 첫 시작을 11월 13일 여의도에서 한데요 30만 가족들이 저를 지키기 위해 모두 모이는 거죠. 여러분도 절 지켜주실 거죠? 2002년 11월 11일 쌀이 보냅니다

홍미진 기자  h-logall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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