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군 연라1리 이성우 이장

지난 10월 31일 전국 각지의 7천만 이장들이 모여 11월 13일 ‘우리쌀지키기 전국농민대회’를 위한 ‘전국 이장단’을 발족시켰다. 그동안 ‘이장’은 단순히 정부의 방침을 농민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공무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각박한 세상물정 모르는 농촌의 할머니, 할아버지께 ‘이장’은 자신의 경제적·사회적 입장을 대신해주는 든든한 큰아들이다. 농촌에서 이장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기 때문에 막걸리 한잔에 푸는 정치이야기도 금기였다.

그런 이장들이 정부의 정책에 직접적 영향을 끼칠 대대적인 투쟁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기로 했다. 처절한 위기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시장을 개방하는 건 옛날 지주전호제를 다시 불러오는 거야.” 경기도 여주군 연라 1리 이성우 이장은 외국 농산물을 도입한 후 몰락하는 농민들을 소작농에 비유했다. “농사꾼은 그냥 놔두면 자연스럽게 각자 알어서 잘 살아가. 시장 개방하는 거 결국 농사꾼 일부만 농사하게 놔두고 나머지는 농사를 그만 두라는 소리 아니야? 10명 중에 한 명만 농사하고 나머지는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 결국 소작농이 되는 거지”하며 “남은 9명의 소작농을 위한 대책이 없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해가 갈수록 쌀값이 떨어지고 게다가 쌀 개방이 점점 현실화되면서 이장들은 적극적인 뭔가를 하기로 결심했다. “이장은 ‘관’과 ‘민’을 연결하는 역할을 했어. 하지만 이젠 우리가 뭔갈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설픈 공인에서 벗어나 이제는 농민의식을 직접 바꾸기로 결심했지. 우리도 농민이거든.”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쓰며 전국각지에서 모인 이장들은 ‘전국 이장단’을 발족시키면서 각 마을 당 버스 1대에 해당하는 농민들과 함께 오는 13일 여의도에서 열리는 ‘우리쌀지키기 전국농민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의했다.

하지만 전 농민의 10%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실제로 몇몇 이장은 “농민대회에 참가했다가 사고가 나면 모두 이장님 책임”이라는 경찰의 전화를 받아 이장단 활동에 지장 받기도 한단다. “농민의 대부분이 50대 이상이야. 사실 무슨 투쟁같은 거 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먼저 하게 된다고. 어르신들 한분한분 찾아뵈면서 ‘무슨일 나면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안심시키는 것이 생각보다 잘 안돼. 근데, 솔직히 말해서 이장들도 겁나기는 마찬가지거든.” 그래서 이장들과 농민회가 서로를 다지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11월 13일 여의도 행 버스를 농민들로 채우면서 이장들은 현실적인 어려움에 많이 부딪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성우 이장은 “농민들이 눈을 떠야지. 뭐가되든 그 자리에 가서 많이 봐야 뭔가를 느낄거 아냐. 정치인들도 눈으로 직접 보고, 얘기하는 것도 들어보고 해야지.” 사뭇 정열적으로 힘있게 말을 잇던 이성우 이장은 한편으론 마을 농민들에 대한 걱정도 놓치지 않았다. “너무 과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대대적으로 평화적으로 해야지”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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