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여, 오라. 낭만아, 피어라.

바야흐로 낭만의 계절 봄이다. 한껏 부푼 기대를 안고 입학한 새내기부터 흔들리는 미래 앞에서 주저하는 취업준비생 그리고 자기의 자리에서 여전히 꼿꼿이 자기 할 일을 하는 여러 학생들. 그들 모두에게도 봄은 새로운 시작이고 설레는 계절임에 틀림없다. 장한벌 곳곳에서 그들이 뿜어내는 봄의 숨결을 느껴보자. - 편집자 풀이 -

# 잔디밭에서

“처음부터 오고 싶었던 대학은 아니라서 새로울 것도 흥미로울 것도 없었는데 널따란 잔디밭에서 동기, 선배님들과 함께 얘기하고 고민하고 놀면서 우리대학이 참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고요. 참! 전에 있었다던 장미 터널도 다시 생겼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새내기들이 대학 오면 하고픈 일에는 잔디밭에서 게임하기, 잔디밭에서 토론하기, 잔디밭에 뒹굴기 등 ‘잔디밭’이 절대 빠지지 않는다. 아무리 대학문화가 개인주의로 변하고 취업에 치여 산다지만 요즘 대학생들에게도 마당 깊은 우리대학의 잔디밭은 캠퍼스 낭만의 백미다.

잔디의 푸르름을 보기에는 아직 겨울의 아쉬움을 간직한 꽃샘추위의 냉랭한 기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20대의 젊은 열기는 잔디밭에 여러 개의 둥근 끈을 만든다. 선배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얻어낸 자장면을 잔디밭으로 배달시켜 먹는 수십명의 새내기 무리, 오랜만에 만난 과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의 안부와 미래를 논하는 고학번들, 동아리의 단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팀 등 이렇게 저렇게 모인 학생들이 장한벌에 귀중한 풍경을 안겨준다.

‘우리들의 천국’에서부터 ‘뉴논스탑’까지 중·고등학교 때부터 키워온 부질없는 캠퍼스의 환상 속에 갇혀 있다가 새빨간 거짓말임이 판명된 현실에 실망하는 새내기 그리고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캠퍼스의 모습과 현실과의 괴리감을 한껏 비웃는 헌내기에게도 잔디밭은 시들지 않는 청춘의 위안이다. 비상하고픈 열망을 숨긴 봄의 열정은 이렇게 성큼 우리 앞에 온 것이다.

# 벤치를 따라

“빵굽는 타자기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방황의 길 한가운데 있는 저에게 기대를, 희망을 제시해 주었어요. 제가 밑줄 그은 글귀 중에 ‘의사나 정치가가 되는 것은 단지 자신이 진로 결정을 하는 것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자신에게는 글쓰는 일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멀고도 험난한 여정에 선택 당한 것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 제가 이 자리에 남아있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죠”

꼭 이맘때, ‘아름다움은 파멸의 시작이다’라는 시구에 잔뜩 매료되어 오들오들 떨며 릴케의 ‘두이노의 비가’를 읽었다던 어느 작가. 학점관리와 아르바이트 등 이런저런 핑계로 책 한 권 읽지 않은 학생들이 대다수인 현실에서 이성과 감성 사이를 방황하는 낭만이 여기 장한벌 벤치 위에 있다.

1월이 새해의 첫달이라고 하지만 책 한 권을 손에 쥐기를 시작하는 첫달은 봄의 시작, 3월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아슬아슬한 상실감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이 밑줄을 그으며 절망과 희망, 고통과 쾌락, 완전과 무의 경계 사이에서 고민한다.

폭발하는 지식의 욕구 앞에서 무조건 많이 읽고 싶다는 열정적인 책벌레들, 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냉정하게 살피고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사회과학 서적 300권 이상은 봐야한다는 열혈 청년, 봄길 위에서 자신을 풍요롭게 채우고 싶다며 오래된 시집의 먼지를 털어 내는 감상적인 학우 등 각기 나름대로의 신념을 가지고 젊은 지성인으로서의 교양을 다진다.

품에 파고드는 바람은 부드러워졌지만 살며시 스며드는 추위에 파랗게 얼어버린 손에 들린 책이 가볍게 들뜨게만 보이는 캠퍼스의 공기를 깨우고 고뇌의 무게를 고스란히 실으며 긴장시킨다.

# 학관 앞에서

“세상에 가장 뜨거운 이름으로 이렇게 봄은 왔고 이 아름다운 봄날에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예의를 지키고 갖추어 가는 것이 낭만의 기본 아닌가요? 우리는 그 기본권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것일 뿐이고 많은 이들도 탈정치적인 듯한 굴레에 안주하기보다는 지금 자신에게 되물어보았으면 좋겠어요. 만약 사람이 사람 노릇도 못한다면 괴물은 되지 말아야 하니까!”

동아리 홍보를 위해 곳곳에서 들리는 흥겨운 리듬 속에서 간간이 들리는 생고함소리가 낯설다. 반전과 장애 학우 인권을 위해 선전하는 또다른 청춘들. 순수하고 단순한 반항, 국내외의 압제자들에 대한 항거를 민중에게 일깨우는 트럼펫 소리, 봉건주의·절대주의·외국의 지배에 대한 투쟁으로 점철된 낭만주의가 이곳에서 번쩍인다.

대부분의 학우들이 봄의 완연한 낭만을 즐기고 있다면, 이들은 그들이 즐기는 낭만의 평온함을 세계 모든 민족들이 공유하도록 만들기 위해 낮은 목소리로 일하고 있는 아주 특별한 낭만주의자들이다.

우리들이 누리는 이 푸른빛 낭만도 냉엄히 드리운 전쟁의 기운 앞에서, 남들과 조금 다르면 백안시하는 보통사람들의 서슬퍼런 편견 앞에서는 무참히 깨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려야 할 이 모든 서정적 리얼리즘이 제외된 삶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해야하지만 잘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일과 이상들을 그저 조용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에 비해, 이들이 행동으로 펼치는 사회비판적이고 실천적인 학생운동은 한결 아름다운 낭만이다. 절망의 계절에서 봄날은 오고, 눈빛은 낭만을 위한 투쟁으로 빛나고, 따스한 햇살과 함께 캠퍼스의 봄은 청년의 붉은 피로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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