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용기있는 선택

인천광역시 중구에는 미혼모들을 위한 '미혼모의 쉼터-인천 자모원'이 있다. 천주교 인천교구 유지재단에서 운영하는 자모원은 낙태로 무수히 죽어가는 어린 생명을 한 명이라도 살리자는 생명운동에서 시작되었으며, 갈 곳이 없는 미혼모들의 보호와 출산을 도와주기 위한 안식처를 마련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15명의 미혼모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이들의 대부분은 10대에서 20대로 엄마가 되기에는 아직 어린 소녀, 여성들이다.

애초 기획에는 이들이 자모원에 오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었는지, 현재 생활과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에 대해 취재를 할 계획이었으나 철저한 비밀보장이 요구되기 때문에 취재가 불가능했고, 대신 자모원에서 생활하는 미혼모 여성의 수기를 받는 것으로 대신하게 됐다.

너는 나의 영원한 딸
처음에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무섭고 두려웠다. 부모님께 어떻게 말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눈물밖에 나오지 않았다.
엄마와 병원을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아기의 심장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기 전만 해도 낙태를 생각했었는데 아기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신기하기도 했고, 아기를 낳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는 임신이라는 소리에 경악을 금치 못하셨고, 처음에 낙태를 권유하셨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개월 수가 많아서 낙태를 하면 몸도 위험하고 살인이라고 출산하는 게 최우선의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다. 이 소리를 듣고 집에 와서는 어떻게 할 거냐고 다그치셨다. 난 엄마에게 죄송하고, 불효자식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기를 낳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엄마는 버럭 화를 내시면서 아기를 낳아도 당장 어떻게 키우고 할 것이냐며 아기 낳는 것을 반대하셨다.

곧 아빠도 알게 되셨는데 오히려 아빠는 처음에 낙태를 생각하시더니 낳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셨다. 낙태를 하면 몸이 위험한 것은 물론이고, 뱃속에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아빠의 말씀에 엄마도 동의하셨다. 우리는 이 사실을 남자 쪽에다 알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남자 쪽에서 아기를 책임진다는 식으로 말을 하였다. 그러다가 능력도 안되고 아기를 키우는데 자신이 없다고 말하였다. 난 그 말을 듣는 순간 배신감과 원망이 치밀려 왔다. 하지만 난 이 상황에서 차라리 책임도 못 질 거면 오히려 좋은 부모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아가길 원했다.

부모님께서 미혼모시설인 자모원이라는 곳을 추천해 주셨다. 조금 견디기 힘들어도 집보다는 마음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곳이 더 좋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도 부모님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자모원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 오게 되면서 무엇보다도 가족의 격려와 용서가 큰 힘이 되었다. 여기 들어올 때 아빠께서는 나에게 "네가 무슨 잘못을 하더라도 넌 나의 영원한 딸이고, 이건 잠깐의 실수로 일어난 것이니까 너무 죄책감을 갖지 말아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저를 미움과 원망도 없이 격려해 주시고 챙겨 주셨다. 또한 표현은 안 하셔도 나를 걱정하시는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기에 너무 죄송했다.

자모원이란 곳은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과 용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인 것 같다. 여기 있는 게 오히려 더 편하고 친구들과 함께 있어서 더욱 좋다. 선생님들께서도 우리가 부족한 것을 하나하나 옆에서 챙겨 주시는 게 참 아름답고, 우리가 본받아서 남에게 다시 한번 베풀 수 있는 그런 모습들만 보여주신다.

나도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이런 곳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을 다그치기보다는 사랑과 용서로 보듬어주고 베풀어주고 싶다. 이런 자모원 같은 곳이 많이 생겨서 새 생명들이 무사히 자랄 수 있게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미혼모는 본인의 심리적인 괴로움은 물론, 가족 간의 관계나 아기 아빠와의 관계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많은 고통을 겪는다. 미혼모를 바라보는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 역시 이들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한 생명을 살려냈다는 점에서, 미혼모들의 용기 있는 선택은 높이 평가될 수 있겠다. 하지만 위 수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미혼모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최근 젊은이들의 개방된 성의식으로 인해 혼전 성관계 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면서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방된 성의식에 따르는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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