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를 찾아서

섬.

이 한글자는 육지와 떨어져 있는 만큼이나 불안전하고 고독하다. 하지만 소리를 내었을 때 미세하게 울리는 떨림만큼이나 섬세하고 처절한 아름다움이 있다.

신혼부부들의 생애 가장 아름다운 추억의 장소가 되는 섬, 일본이 비위좋게 몇 십 년째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동해의 섬, 10여 년 전 멸치잡이로 부자가 된 집에서 대통령이 나온 해금강을 닮은 섬, 옛날에 신선이 노닐었다던 서해 바다 한가운데 점점이 떠있는 조그만 섬들 그리고… 할머니가 ‘문둥이’가 간을 빼먹는다고 가지 말라던, 소외받은 영혼들의 ‘천국’이라 불리는 어린 사슴을 닮은 섬.

서울에서 7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고흥군 녹동읍 앞바다. 그 앞 1km도 채 안되어 보이는 거리에 위치한 섬이 소록도이다. 한센(나병) 환자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 소록도는 800여명의 환자들과 500여명의 병원관련자 및 관리자와 가족들이 살고 있다. 예전에는 한센병 환자와 병원 직원들만의 섬이었으나 지금은 소록도의 아름다운 경관이 알려지면서 일반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 되었다.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배를 타고 5분 정도 들어가면 소록도에 도착한다. 소록도에 들어서면 ‘한센병은 낫는다’라고 씌여진 큰 비석이 보인다. 병에 대한 공포에 앞서 세상에서 소외되고 천대 받았던 그들의 간절한 바람과 슬픔이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록도에 한센병 한자들이 모여 살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좋은 시설의 국립나(환자)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 병원의 뿌리는 1916년 일제가 세운 자혜의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많은 나환자들이 사회문제로 부각되자 조선 총독부는 물과 가깝고, 육지와 가까워 물자이동이 수월하기에 적당한 남도의 깨끗한 섬 소록도로 나환자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그 때 탄생한 것이 자혜의원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환자들은 치료보다는 수용이라는 개념이 더 가까울 정도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았고, 심지어 생체실험까지 행해졌을 정도로 참혹한 상태였다. 환자들은 벽돌을 찍어내고 공원을 가꾸는 등 강제노동에 시달렸고 급기야 자살하는 사람, 맞아 죽는 사람, 탈출하다 죽는 사람 등이 속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당시 병원장이 분노한 환자에 피살되는 일까지 생겼다.

그 당시 희생되었던 원생 84명의 원령비에는 하나님이 주신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성을 존중해야 하며 인간적인 차별이나 정치적인 불이익, 종교적 분쟁과 갈등으로 인한 인권침해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써있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보장받지 못한 인간의 기본권이다. 죽어서야 그들의 고요한 외침이 조그맣게나마 육지에 닿았으니 이제는 위로가 될까?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 국립 나병원, 국립 소록도 병원으로 여러 차례 이름이 바뀌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 공원의 한 쪽에는 그때의 참혹한 실상을 말해주는 듯 당시의 현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가족들과 떨어져 눈빛으로 주고받을 수 밖에 없었던 눈물의 수탄장. “모래알처럼 번성하라던 신의 섭리를 역행하는 메스를 보고 지하의 히포크라테스는 오늘도 통곡한다”는 정관수술과 “3번 죽는다. 첫 번째는 한센병 발병이요, 두 번째는 시체해부요, 세 번째는 장례후 화장이오”라는 사망환자 해부가 행해졌던 싸늘한 검시실. 붉은 벽의 육중한 담 아래 끊임없이 인내의 기도를 드려야 했던 감금실. 이루 말할 수 없으리 만큼 큰 고통을 보면서 과연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폭력의 끝이 어디인지 자문하게 했다. 초여름의 눈부신 초록빛이 들어선 소록도는 어딜가나 나무와 꽃이 풍성하다. 잘 정돈되어진 아름다운 광경을 만든 것도 그 분들의 약한 팔과 발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다.

소록도에는 우체국 등 어지간한 기관들은 다 있어 살기에 큰 불편함은 없다. 특히 종교기관인 교회나 성당, 절이 많다. 사람에게 기대하는 위로가 아닌 차라리 저 어딘가에 계시는 신이 주시는 깊은 평안함과 위로만이 그들을 살게 해주는 명약이기 때문일 것이다. 소록도는 해수욕장과 중앙공원 2군데만 개방을 하고 있어 일반인이 섬 전체를 볼 순 없다. 그리고 당연히 고성방가는 금지고 쓰레기도 담아서 가야하며, 오전7시에서 5시까지만 머물 수 있도록 되어있다. 아마도 이곳을 떠도는 슬픈 영혼들에 대한 예의를 다하기 위함일 것이다.

육지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혼신을 다해 바닷물을 붙들 수밖에 없는 섬의 운명처럼 그 섬의 사람들도 육지의 사람들과 인연을 끊을 수는 없다. 하지만 소록도의 한센병 환자들이 보는 보통사람들은 걸어서는 갈 수 없는 녹동항과의 거리만큼이나 멀게 느껴진다. 그래서 소록도를 선택한 그들은 세상과 마주 서기를 두려워하며 거부한다. 그 점이 소록도가 사슴의 눈처럼 슬퍼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녹동항과 소록도 사이에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이 필요한 것일까? 육체는 훼손되었지만 순한 영혼이 숨쉬는, ‘당신들의 천국’(이청준 소설), 소록도. 그 바닷물은 이상하게도 더 짜고 더 씁쓰름하다.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 ㄹ 닐니리

-한하운 ‘보리피리’

나병으로부터 오는 절망과 세상 사람들과 유리된 채 유랑 생활을 해야 하는 고독 속에서 시인 한하운은 고향과 세상사를 그리워하며 이 시를 썼다. “청운의 뜻이 허허, 천형의 문둥이가 되고 보니 지금 내가 바라보는 세계란 오히려 아름답고 한이 많다. 나를 사로잡는 것, 그것은 울음 속에서 터지는 모든 운율이 나의 노래가 되고 피리가 되어 조국 땅 흙 속에 가라앉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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