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법 위반 수배자로 공개활동 선언한 나진숙 동문

“국가보안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잘 모르겠어요. 그거 없으면 큰일 나는 것 아니에요?” “최근에 국가보안법 수배자 중 공개생활을 선언한 우리대학 동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요즘도 그런 사람이 있어요?” 국가보안법에 대한 취재를 하면서 학우들과 나눈 짤막한 대화다.

▲ © 윤태웅 기자

우리대학 동문 중 지난 8월 10일 7년 동안 국가보안법 정치수배생활을 해오다 공개생활을 선언한 나진숙(공과대ㆍ전자과 03졸) 동문이 있다. 어렵사리 취재약속을 잡고 전화를 기다리며 기자는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걸려온 한 통의 수신자 부담전화. 남들 다가진 손전화 하나도 경찰의 추적 때문에 마음 놓고 들고 다니지 못한다는 동문. 동문의 전화에 긴장을 감추지 못했지만 “여보세요~” 하는 부드럽고 밝은 억양의 목소리에 긴장된 마음이 한순간에 놓였다.

학내 한 카페에서 만난 나진숙 동문은 함께 온 기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긴 수배생활 끝에 공개 활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았다. “수배생활동안 경찰들의 괴롭힘을 많이 당했는데 오히려 공개 활동을 하니 나를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공개생활은 국가보안법에 대한 나의 신념과 양심을 드러낸 것에 불과해요”라며 오히려 담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진숙 동문은 “사회는 이렇게 변해 가는데 시대라는 족쇄가 많은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현실이 개탄스러워요. 국가보안법 때문에 20대 청춘을 수배생활로 다 보내고 결혼까지 앞둔 지금도 국가보안법이 발목을 잡고 있죠”라며 국가보안법의 폐혜를 말해주었다.

나진숙 동문이 국가보안법 정치수배자가 된 직접적 이유는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아래 한총련) 대의원이라는 것 때문이었다. 2000년대 초, 총여학생회장과 총학생회장을 역임한 동문은 각 대학 대의원이거나 총학생회장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총련에 소속되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수배범이 된 셈이다. “2000년에 총여학생회장이 되었을 때 수배생활과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에겐 커다란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오히려 부당한 법은 피하지 않고 더 앞장서서 싸워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때 당시에는 국가보안법 적용이 철저했던 탓에 한총련 대의원만 보이면 경찰의 전담반이 잡아갔다고 한다. 그래서 교내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었다는 동문. 교문을 한발 짝 나서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다고 한다. 혼자 학생회관에서 밤을 지새울 때의 외로움과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고. 국가보안법 철폐 집회를 하고 학교에 돌아오는 중에 학교 앞을 지키는 사법경찰을 피해 어렵사리 탈출한 사건은 절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따뜻한 물이 나오지 않는 겨울엔 잘 씻지도 못하니 한 달에 한 번 선배들과 작전을 짜 목욕탕을 다녀오곤 했는데 그때가 유일한 외출이었다. “저는 제 명의로 된 이메일이나 남들 다하는 싸이월드도 없어요. 그러니깐 친구관계도 다 끊어지는 거죠. 수배생활은 한 사람의 사회생활을 완전히 매장시키는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인권침해상황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진숙 동문은 “경찰들이 가족에게까지 협박과 회유하는 것을 볼 때면 정말 가슴이 아파요”라고 심정을 토로했다. 경찰들이 매향리에 있는 공장을 다니는 아버지에게 찾아가 잘 봐 줄테니 자진 출두를 권유하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친언니에게 수시로 연락을 한다고 한다. 친언니가 “아빠는 너 때문에 맨 날 술 드신다”는 말을 할 때 누구보다 정직하게 살아오신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수배생활을 하는 동안 명절 때가 제일 싫었다는 나진숙 동문. 가족 대소사가 있을 때 집에 가지 못하고 추석 즈음의 어머님 기일을 한 번도 챙겨드리지 못한 것은 더더욱 동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 윤태웅 기자

국가보안법의 공소시효는 7년이다. 2000년에 국가보안법 정치수배자가 된 후, 2002년에 총 학생회장에 당선되어 공소시효가 새로이 적용된 동문은 2009년에야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2009년까지 공소시효를 채우고 자유의 몸으로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냐는 물음에 동문은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지금 나의 상황에서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에요. 이것도 또 하나의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방법이라고 생각해요”라며 신념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어 나진숙 동문은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나 같은 수배자만 피해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살고 있는 모든 7천만 국민이 피해자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자유로운 사상을 통제하고 통일을 가로막는 국가보안법을 보수언론의 관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본질을 꿰뚫어 보는 것이 필요하겠죠”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동문은 경찰이 쫓아오면 어떻게 하냐는 하는 기자의 걱정에 “이젠 겁도 나지 않아요”라며 농담으로 받아쳤다.

나진숙 동문은 카페 밖을 나서며 “처음엔 저도 이렇게 수배생활을 오래할지 생각도 못했어요. 국가보안법도 빨리 없어질 것이고 통일도 빨리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신념과 양심을 지키며 살아온 제 인생에 대해선 부끄러움이 없고 후회도 없어요. 그래서 후배님들은 저를 생각할 때 걱정의 마음보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가져주었으면 좋겠어요”라며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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