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179호 <건대신문>에서는 총학생회와 총여학생회의 활동을 중간평가 해봤습니다. 그런데 그 평가결과가 썩 좋지 않습니다. 총학생회의 등록금 투쟁은 결국 중운위원들을 아우르지 못해 흐지부지해지고 총여학생회는 학우들이 존재조차 잘 모르더랍니다. 왜 그럴까요?

평가가 좋지 않은 가장 큰 원인은 임원진의 역량 부족도, 지향점이 맞지 않기 때문도 아닌 것 같습니다. 총(여)학생회가 힘이 모자라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집행부들의 숫자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책과 실천 과제가 선정됐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부족하다보니 일을 제대로 진척해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총(여)학생회의 활동에 대해 지속적으로 같이 고민하고 평가할 수 있는 조력자가 부족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총(여)학생회장들이 집행부를 잘 모집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라구요? 글쎄요.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집행부로 함께 학내외 사안을 고민하고 주도적으로 실천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학생회의 일원인 학우들은 학생회의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학생사회가 올바른 사회, 더욱 발전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가 더 좋은 환경에서 살아가기 위해 져야 하는 책임입니다.

그러나 요즘 학생들은 정말 옛날 같지 않습니다. 취업 등 당장 자신에게 직면한 문제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대학사회는 물론 나와 관계 맺고 있는 사회에 대한 고민이 줄어든 것이 사실입니다. 신자유주의로 인한 사회양극화 문제와 청년실업 문제로 인해 학우들은 대학에서 학문을 탐구하고 담론을 나누기보다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며 취업을 준비하기에 바빠진 것이죠.

그러다보니 취업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학생회 임원을 하기보다, 영어 단어 한 자 더 보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생활의 목표가 대학진학이더니 대학에 와서는 취업이 돼버린 것이지요.

대학생이라면 학내외 사회 문제에 대해서 건설적인 담론을 나누고 학교와 나라 걱정 좀 해줘야 학생사회와 이 나라가 점차 건설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러한 와중에 최근 환영할만한 일이 생겼습니다. ‘평등ㆍ자유를 위한 건대학생모임(가)’이라는 모임이 생겼더군요. 전에는 포스코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대자보를 붙인 걸 봤는데 최근에는 평택 주한미군기지 확장에 대한 대자보를 붙였더군요.

죽순회처럼 학내외 사안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나누는 동아리를 제외하고 다른 동아리나 소모임 활동이 미비한 상태에서 이런 학생모임이 생긴다는 것은 정말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좌파 우파를 떠나서 이런 건설적인 담론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아야 그 사회의 문제가 들춰지고 해결될 전망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오는 9월 23일 반전 집회나 24일 평택 평화대행진에서 독자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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