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무엇인가에 강하게 집착하며 스스로를 파멸로 이끈다. 불로장생에 대한 진시황제의 집착은, 찬승에 대한 상곤의 집착과 교차한다. 그의 대사처럼 그는 단 한가지의 에피소드에 전 생애를 바치는 어리석음을 보였지만 어쩌면 그것은 그의 숙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상곤은 혼혈아란 굴레 속에서 힘겹게 살아간다. 동성애자인 그는 친구라 믿고 따르는 찬승을 사랑한다. 그러나 찬승에게 있어서 상곤은 그저 이용하기 쉽고 어딘지 모르게 기분 나쁜 존재일 뿐이다. 찬승의 집 초대에 기쁜 마음으로 달려간 상곤은 그곳에서 장애인인 찬승의 형에게 성적학대를 당한다. 더욱 그를 견딜 수 없게 만든 것은 그 장면을 낄낄거리며 구경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었다. 몇 년이 지난 후 둘은 재회했지만 여전히 찬승은 그를 경멸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 극에서 상곤은 비주류, 즉 사회적 약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동성애자이며 혼혈아이기까지 한 그는 정신적 목마름을 찬승을 조각함으로써 달랜다. 진시황릉을 찾아가는 상곤은 무엇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결국 절망만을 확인할 뿐이다. 진시황제는 이제 없다. 남은 것은 단지,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던 진시황제의 안쓰러운 흔적들뿐이다. 생명에의 집착으로 토병을 조각했던 진시황제는 찬승을 조각하는 상곤으로 환생했다. 무대 여기저기에서 진시황제의 음성이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상곤의 혼돈과 공포의 감정은 음향효과로 적절히 표현된다.

박지일씨의 다중 인격적 인물 연기는 하나의 공간을 과거, 현재로 몰아넣는다. 암흑 뒤에 찾아오는 새로운 장면의 느낌은 연극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자연스러움’이었다. 가볍게 풀어갈 수 있었던 동성애라는 소재를 시종일관 무거운 분위기로 이끌어 나간 것은 소수자에 대한 작가 나름대로의 안타까움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상곤이 서안화차에 몸을 맡기고 독백한다, 진시황제를 만나러, 자신의 의미를 찾으러 그는 반쪽조국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상곤은 과연 어떤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불로장생에 대한 진시황제의 집착이 덧없었음을 그는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사회에서 비주류가 어깨를 피기란 인간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을 꿈꾸는 것과 같이 허무맹랑한 희망에 불과한 것인가. 일반이 아닌 ‘이반’의 험난한 여행의 끝이 ‘죽음’이 아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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