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책토론회

지난 15일 늦은 1시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1층. 추운 바람에 고개를 숙이고 로비입구의 문을 연 학생들은 앞에 펼쳐진 낯선 광경에 모두 놀란 눈치다. 친구를 기다리거나 점심 식사 메뉴를 고르는 학생들로 분주할 로비에 왠 학생들이 의자에 앉아 자신을 향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는 2030 유권자 네트워크와 대학언론인운동본부가 주최한 ‘대학생과 함께하는 희망정치 만들기 토론회’다. 민주노동당 정책부장 김정진 변호사, 새천년민주당 최고위원 신기남 의원, 한나라당 2030위원회 본부장 김영춘 의원을 식당이 있는 학생회관 1층에, 그것도 점심 러시아워인 늦은 1시에 모셨으니 학생들이 놀랄만도 하다.

한수영양과 장원진군, 장재훈군을 학생 패널로 하고 본사 편집장이 사회를 본 이 토론회는 황주홍 교수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토론자와 학생패널 소개, 각 정당 발제문 발표로 이어졌다. 핫도그의 매콤한 소스 냄새, 식당에서 풍기는 밥 냄새 속에서, 양복 입은 세 정치인이 마이크에 대고 차분한 저음을 내니 시선이 집중 될 수밖에. 지나가던 학생 한 명 한 명이 모여 토론장 주위를 가득 메운다. 하다못해, 2층에서 내려다보는 학생도 있으니, 다들 관심이 있는 모양이다.

■정당별 발제

정치개혁과 대학생활에 관련된 정책에 대한 각 정당별 발제는 민주노동당이 첫 시작이었다. 김변호사는 ‘당비를 직접 충당하는 제대로된 당’을 강조하며 ‘선거권 연령을 18세로 낮추어야 한다는 것’과 ‘양심적 병역거부를 즉각 도입할 것’등의 내용으로 발제를 했다. 이어 새천년민주당의 신의원은 노무현후보가 국민경선을 통해 결정된 것을 들어 “국민참여의 상품으로 노무현을 내놓습니다”라며 “노무현은 개혁과 미래의 서민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한나라당의 김의원은 “한나라당의 막내인 저를 비롯한 소장개혁파가 노인당의 이미지였던 당의 체질을 개선하겠다”고 했다. 또 “선거 후 한나라당 안에서 공약으로 제시한 것들을 잘 실천하는지 감시하겠다”며 발제를 마쳤다.

■한나라당의 대북정책

이어 각 당별 발제문에 대한 질문과 정당별 개별질문이 있었다. 이는 주로 패널의 질의에 토론자가 응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한나라당의 김의원은 6·15공동선언 이행에 관해 한나라당의 입장을 듣고 싶다는 패널의 질의에 “현 DJ정권의 햇볕정책과 다른 정책을 주장한다고 해서 수구냉전적 세력으로 모는 것은 지나치며 국회에서 드러나는 일부 극단적 목소리를 한나라당 전체의 당론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북한지도부가 북한 정권이 아니라 북한 민중을 위해서 남한과 교류협력 한다면 북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진보정당이 직면한 현실 문제에 대한 질문에 민노당의 김 변호사는 첫째로는 빈약한 자금력을, 둘째로는 민주 노동당에 대한 편견을 들었다. 그는 “저희가 머리띠 두르고 돌만 던지는 줄 안다”며 “막연한 선입견으로 구체성과 현실성이 없다는 평을 받고 있다”고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공동질의-학내부재자투표소 설치운동과 투표연령 낮추기

다음으로 장원진 군의 질의가 이어졌다. 투표연령 낮추기와 학내 부재자투표소 설치운동에 대한 각 정당의 의견에 대한 질의였다. 민노당의 김 변호사는 “투표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것은 적극 찬성하며 부재자투표소설치를 위한 서명기준도 500명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해 청중들의 박수를 받았다. 민주당 신의원도 “투표연령을 낮추는 것에 동의한다”며 “이제는 한나라당만 동의하면 된다”고 했다.

이에 한나라당 김의원은 “19세로 하향조정하고 점차 18세로 낮추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장원진군이 “그렇다면 이번 16대 대선에서는 불가능하더라도 17대 대선에서 집권당이 되든 되지 않든 선거연령을 19세로 낮추자”고 말하자 김의원이 “저도 그렇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라고 화답해 또다시 박수가 터졌다.

■청중질의-국가보안법에 관하여

학생 패널들이 질의를 하는 가운데 질문을 원하며 손을 들던 청중들에게 순서가 돌아갔다. 안영철(축산대·축산3)군은 청중으로 앉아있는 몇몇 학생들을 가리키며 “둘러보시면 많은 학생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 이분은(옆사람) 예비 수배자입니다. 한총련 대의원으로 수배자가 될 분인데요”라고 질의를 시작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안군은 “국가보안법에 묶여 학교안에서 감옥처럼 생활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이나 현실을 확실히 얘기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질문했다.

이에 민주당 신의원은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것이 확실한 우리 당론”이라며 “한총련 이적규정은 현재 발전된 정치상황과 남북관계를 볼 때 재고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한나라당의 김의원은 “좀 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은 내년쯤이면 풀어줄 수 있는 상황이 오리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장애인 이동권

학생 청중과 의원들간의 경제특구, 선거법 등 자유로운 질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토론을 마칠 시간이 되어 쏟아지는 질의 중에 장애학우 이은구(상경대학·경제3)군이 마지막으로 질문하게 됐다. “보시다시피 저는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군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입으로 힘들게 질의를 하자 청중들의 눈길이 모두 이군에게 쏠렸고, 순간 이 문제에 공감하며 주위가 조용해졌다. "장애인 이동권연대에서 버스타기 운동이나 지하철타기 운동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은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기본적 권리입니다. 이에 대한 세 당의 당론을 듣고 싶습니다.” 무언의 공감 속에서 한나라당 김의원이 “지금 문제제기가 되었으니 부적절한 법이나 제도들을 개선하기 위해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고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에 이군이 “장애인 버스타기 운동할 때요, 경찰들이나 전경들을 주변에 배치하지 말아주십시오. 어느 당이 당선되든 경찰을 깔지 말아주십시오, 부탁합니다”라고 호소하자 청중의 진지한 박수가 쏟아졌고 몇몇 사람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열심히 욕한 당신, 찍어라

시간이 지연돼 사회자가 의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요청하자, 질문을 요청하던 많은 청중들이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민주당의 신의원은 “정치가 잘되려면 욕이라도 해야한다”며 “정치인을 욕하는 관심이 우리 정치를 바로 세우는 거름이고 햇볕”이라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우리는 정치인을 욕하지만,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투표해야 합니다”는 민족건대 유권자운동본부 공동대표인 장원진군의 인사말로 토론회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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