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찾아서

생소한 나라와 감독, 배우가 뭉친 영화를 보는 것은 영화 원래의 매력에 더하여 또다른 모험의 묘미를 준다. 그래서 화제 가이드북에 소개되었던 짧은 정보만으로는 알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의 루트를 찾기 위해서는 직접 영화를 봐야한다.

그럼 무슨 영화를 볼까? 월드 시네마 부분에 초청된 호주 영화 ‘토끼 보호용 울타리(Rabbit-Proof fence)’는 호주 원주민 여성의 삶을 다루고 있다. 14세 소녀 주인공은 원주민과 백인 사이의 혼혈아라고 하지만 거무튀튀한 얼굴에 두툼한 입술, 넙적한 코가 백인보다는 원주민의 진한 피가 느껴진다. 강제로 맡겨진 보육기관에서의 육체적·정신적 학대 때문에 탈출한 그녀에게 토끼 보호용 울타리는 안내자이자 보호막이다. 자아도취적 우월감으로 가득찬 백인들의 편협한 이기주의가 이 울타리를 위협하지만 그녀는 원주민의 피에 섞인 당당함과 자존심으로 넘어지기를 반복하며 일어선다.

사실 이 영화가 관객의 가슴에 더 예민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인간이 인간을 물건으로 대하고, 하등하게 여기는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투쟁이기 때문이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인간으로서의 연민과 감동, 호주의 광활한 대지를 향한 영상 그리고 토속적인 음악이 95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이끌며 끝까지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못하게 했다. 한가지 더하면 뒤늦게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이 필립 노이스라는 것을 알고 꽤 놀랬다. 이제껏 사뭇 진지하게 인권에 대해 논하고자 하는 이 영화와는 분위기가 다른 할리웃의 ‘긴급명령’과 ‘본콜렉터’ 등 전에 재미있게 봤었던 액션영화가 다 그의 작품이였으니까 말이다.

2002년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선정되었던 ‘더블비전(Double Vision)’은 대만영화다. 이번엔 ‘뉴웨이브에서 독립영화까지 : 1982 - 2002년의 대만영화’라는 프로그램도 있고 해서 대만영화를 골라서 보게 되었다.

처음부터 공포와 불안이 스크린조차 무섭게 했다. ‘도교’라는 우리와 친숙한 무속적 종교로서의 풀이과정과 잔인하게 잘려져 나가는 목, 반으로 갈라지는 몸뚱아리, 동공이 두 개로 순식간에 뒤집어지는 눈… 인간의 시각은 가장 자극적이고 예민하다더니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간간히 눈앞을 스친다. 그래도 결말은 인간과 사랑으로 지극히 단순하고 순수하다. 오죽하면 이 무서운 영화의 마지막 결말을 본 관객들이 약속하지도 않았건만 동시에 실소를 자아냈을까. 하여튼 놓치지 않는 긴장감과 내면 깊숙히 파고드는 공포감이 113분을 충분히 즐겁게 해주었으니 영화 본연의 자세엔 충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질투는 나의 힘’, ‘막달레나 자매들’, ‘8명의 여인들’, ‘작은 마을의 봄’ 등이 관객의 호응을 얻고 영화제 내내 화제가 되었다. 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들에는 어떤 특유한 느낌이 있다. 그 느낌이 낯선 영화를 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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