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태훈 기자

이인숙 강사와 함께 <장영남의 버자이너 모놀로그>를 관람한 후, 그 열기가 채 가시기 전 근처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오늘로 이 연극을 세 번 봤다는 이인숙 강사는 다소 충격적인 내용을 접한 후 상기된 기자에게 극을 매개로 ‘여성의 몸’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해줬다.

△ 여성학적으로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어떤 의미인가

여성의 성기는 담론화되기 어렵다. 하지만 공연에서는 보지가 주체가 되어 자신을 억압하는 도구들에 대해 불평한다. 그리고 자신은 따뜻하고 편안하고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털어놓는다. 소중한 곳인 보지를 불행하게 만든 여성들에게 문제제기를 하는거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관객들에게 스스로의 몸, 우리의 자궁과 보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극의 서막을 올린 것이 다름 아닌 ‘보지’라는 단어였는데

‘보지’는 음순, 음경이라는 한자어보다 대단히 한국적이고 순수한 우리말인데도 불구하고 금기시 되는 부분을 지칭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사용을 꺼려왔다. 그러다 보니 우리 일상에서 그 의미가 격하돼 버렸다. 수업시간에도 이런 표현을 쓰면 학생들이 파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보지’라는 단어 자체를 사용한다고, 단순히 잃어버린 단어를 찾는다고 특별한 의미나 시각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단어가 의미하는 것이 금기될만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가 쌓아놓은 벽은 스스로 허물어야 한다.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면 자연스러운 단어가 된다.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

△그렇다면 여성의 성이 억압받고 여성 성기에 대한 담론이 금기시 된 역사적 배경은?

여성의 몸은 감춰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 우리의 가부장적 유교문화에서 기인했다. 남자의 성은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왔고 남성의 성기 역시 자부심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순결 이데올로기에 의해 여성의 성과 함께 여성의 성기는 감추어야 할 부분, 남에게 드러내면 안 되고 담론화하면 안 되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지금 나타나는 문제들은 상당히 이중적이지만 안타깝게도 오랫동안 정착돼온 문화다. 스스로를 이중문화와 이중논리에 희생당하고 남자들에게 의존하는 존재, 억압받는 존재로 인식하면 안된다.

△여성의 성과 성기를 이해하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여성들은 성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다. 하지만 자신의 몸에 대한 지식은 부족하다. 음경은 돌출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지만, 보지는 미세하고 감춰져 있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게 된다. 성의 담론화는 되어있는데 몸의 담론화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자신의 클리토리스에 대해 모르면 여성의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클리토리스는 여성의 몸에 있어서 굉장히 소중한 부분이다. 여성이 오르가즘을 느끼는 것은 자궁보다 클리토리스 덕이다. 여성들은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꾸미는 일에 치중하지만 정작 보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알아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생리는 한다. 내 보지, 클리토리스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

<버자이너 모놀로그> 같은 연극들을 많이 보면서 스스로 자신의 몸에 관심을 가지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몸에 대해 함부로 하지 않게 된다. 피임도 내 몸을 소중히 한다는 차원에서 지키는 것 아닌가.

△극중 출산에 대한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보지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그것이 단지 섹스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명을 잉태하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극중 대사에도 나온다. “인간은, 우리 모두는 태초에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모두 보지에서 태어났다.” 얼마나 경이로운가. 남성은 여성이 출산할 때 그 현장에 같이 있어야 한다. 그 행복한 순간을 남편이 함께 공유해야 한다. 그래야 아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보지의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남편이 아내의 보지를 섹스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것은 이중적인 잣대다.

△<버자이너 모놀로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나

여성의 몸에 대해 금기시 한 우리의 성문화는 98년 이후 아우성을 통해 담론의 장을 확대했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새로운 공연문화와 함께 여성의 몸에 대한 담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대화의 대상이자 주제로 자리잡을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본다. 오늘로 공연을 세 번 봤는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심지어는 수녀님까지도 이 공연을 보러왔더라. 여성의 몸에 대해 자연스럽게 토론하면서 여성 성기에 대한 잘못된 편견들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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