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 심사평

지난해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 심사평의 제목은 ‘경쟁이 외로워’였다. 그리고 올해 심사평의 제목은 ‘외로움에 지쳐버린 경쟁’이다.

지쳤다. 서너 해 이 심사를 진행하면서 나는 지쳤다. 대체 이걸 경쟁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모름지기 경쟁에는 에너지가 분출되고, 숨 막힐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정 수준의 긴장감이 감돌아야 하는 법이다. 헌데, 없다. <건대신문> 문화상에는 그게 없다. 적어도 사진 부문에는 아예 없다.

모든 경쟁이 아름답지는 않을뿐더러, 우리사회에서 조장되어 온 대개의 경쟁이 불공정하게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경쟁은 소중하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의미 있는 경쟁을 만들 수만 있다면, 경쟁은 장려되어야 한다.

문제는 게임의 규칙이자, 경쟁의 원칙이다. 대관절 <건대신문> 문화상 주최측은 게임의 규칙을 가지고 있기는 한 것인가(없을 리가 있는가).

이는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요점은 그것이 제대로 된 게임의 규칙이냐는 것이다. 간신히 ‘공정성’이라는 뼈다귀에 매달려 있을 뿐, 경쟁참여자들의 에너지를 분출시키고, 관객의 주목을 이끌만한 ‘흥행성’의 살점을 도외시한 규칙을 고수해 온 것은 아닌가. 나는 누차에 걸쳐 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건대신문>은 반응이 없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그만큼 많은 하객들이 몰려와 남아돌 음식이 없었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똑같은 음식도 여럿이 모여 먹으면 더 맛있고, 군침이 도는 법이다. 산해진미를 차려놓은들 하객들을 제대로 초청하지 않으면, 뉘라서 그 잔치를 떠들썩하고 풍성한 잔치였다고 입방아를 찧겠는가 말이다.

수년째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은 10명 미만의 응모를 기록해 왔다. 건국대 구성원의 0.001%에도 미치지 못하는 이들만이 이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양이 늘 질을 보장하지는 못하지만, 양도 양 나름이다. 이 정도면 상의 존폐 여부마저 고려해야 할 수준이다.

과거에는 문자를 모르는 사람이 문맹이었지만, 현대는 이미지를 읽지 못하는 사람을 문맹 취급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집안의 재산’이었던 사진기가 오늘날에는 ‘개인의 소모품’이 되었다. 이미지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으며, 현대를 살아가는 거의 모든 구성원들이 이에 동참하고 있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사진 부문의 경쟁률은 상승곡선을 그려야 하는 게 아닐까? 문제는 동기부여다. 나는 경쟁자들이 내놓은 응모작들을 심사하기에 앞서, 건대신문사가 학교 구성원들에게 제시한 ‘공모요강’을 도마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대신문사는 문화상 공모요강이 학교 구성원들에게 과연 동기를 부여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상금 현실화나 장학금 수혜, 수상 이후 건대신문 지면 배려, 전문가의 지도 주선 등은 실현가능한 쉬운 방법일 수 있다. 역대 문화상 수상자들의 향후 진로를 추적해 보는 일도 문화상의 권위를 높이는 좋은 방법이다. 아울러 이웃한 학교와 공동주최를 통해 문화상의 위상과 관심, 혜택의 수준을 끌어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경쟁은 보다 치열해 질 것이고, 엄정한 심사를 요구하는 눈초리도 매서워 질 것이다. 이 밖에도 방법은 많다. 머리를 모으지 않고, 좋은 생각을 이 핑계 저 핑계로 실천하지 않는 나태함과 경직성이 걸림돌일 뿐이다.

올해에도 <건대신문> 문화상 사진 부문에는 당선작이 없다. ‘공존’이라는 꿰어 맞추기식 주제는 강요되지 말아야 했다. 경쟁자는 모두 8명이었다. 그 가운데 중어중문학과 임선환 학생의 ‘찰리 체크 포인트’를 가작으로 추천한다. 동서독의 경계지점이라는, 현대사적 공간이 품고 있는 다양한 아이콘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사진이 어떤 얘기를 담고 있는지, 고민했던 흔적을 글로 첨부했기에 가산점을 주었다.

노순택(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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