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규모 다양한 작품 선보여, 주최 측의 행사준비 미흡해 아쉬워

올해로 여덟 돌을 맞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10월 2일 <도플갱어 Doppel ganger>(쿠로사와 키요시 作)로 막을 연 제 8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예년에 비해 더욱 풍성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어 역대 최대 규모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10월 3일 이른 7시경 남포동 PIFF 광장을 찾았을 때 아직 시간이 이른 탓인지 개막일의 열기는 차분히 가라앉은 모습이었으나, 예매를 하지 못한 관객들이 현장에서 표를 구하기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모습에서 전날의 열기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는 이른 9시 30분부터 당일 예매 취소분과 1, 2열 좌석에 한해 표를 판매했는데, 표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탓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몇 시간동안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주최측의 ‘시스템 오류’로 1시간 가량 영화표 판매가 지연되어 10시 30분경이 되어서야 기나긴 행렬이 움직일 수 있었다.

▲ © 김혜진 기자

또한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기 시작하면서 현장 판매 창구를 찾지 못해 곤욕을 치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올 해 처음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는 신길식군(동아대·언론광고2)은 “인터넷 예매를 하지 못해 현장에서 표를 구하려고 왔는데 안내 표지판이나 안내 데스크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결국 영화제와 관련없는 영화표를 끊었다. 스크린 쿼터 축소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치르는 큰 영화제인 만큼 좀 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또 이정민군(부산대1)은 “국제영화제에 걸맞는 외국영화 설명회나 영화 관련 전시회 등은 전혀 볼 수 없고, 거리에는 상업적인 광고물만 넘치며 정작 영화제에 대한 실속있는 홍보물은 너무 부족한 것 같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사실 영화제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상업 광고물, 플래카드 등이 너무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영화를 관람하거나 영화제 자체에 관심이 있어 그 곳을 찾은 사람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단지 기업홍보용 사은품을 받기 위해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욱이 이들 홍보용 가판과 그 주위에 몰려있는 사람들 때문에 영화 입장 시 줄을 설 수 있는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관람객들에게 질서 지키기를 요구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극장측에서는 영화 상영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다음 일정에 지장을 주기도 하여 사람들의 빈축을 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영화제 자체에 도움이 되고자 손수 제작한 포스터를 들고 영화제 지킴이 노릇을 자처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어 흐뭇한 미소를 짓게 했으며,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차례차례 입장하려고 애쓰는 관객들의 모습,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모두 올라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박수를 치는 관객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런 모습들은 8회 째 지속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연륜을 짐작케 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그동안 지나치게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영화들에 지쳐 예술영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던 영화팬들에게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것임에 틀림없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인 60개국 244편의 작품이 선보이게 되는데, 이 중 부산국제영화제에서만 선보이는 작품만 해도 130여 편에 이르러, 뭔가 색다른 영화를 찾던 관객에겐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인 것이다.

물론 해를 거듭하면서 양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질적인 면에서 양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되는 점도 없지 않다. 더욱이 미국의 스크린 쿼터 축소·폐지 압력이 거센 현 시점에서, 스크린 쿼터 제도를 현행대로 유지하자며 목청만 높일 것이 아니라 이러한 큰 행사를 통해 영화제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영화제 개최지의 시민, 더 나아가 영화제 개최국 국민의 성숙한 의식이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영화제라는 것이 영화를 보고 그것 자체를 즐기는 것에 일차적 목적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영화제는 일종의 문화축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라는 문화적 코드를 매개로 한국과 세계가 만나는 문화 소통의 장이라 할 수 있다.

성공적인 문화 소통이 이루어졌을 때 막대한 경제적 이익도 뒤따르게 된다. 이제 단순히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것에 의의를 둘 때는 지났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의례 있는 행사쯤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더 많은 준비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여덟 해를 이어나가며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도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보다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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