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1교시를 듣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 온 영선이.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고 나니 해질 무렵이 되서야 터벅터벅 집으로 간다. 여러 건물에 걸쳐 조각조각 보이는 둥글고 큰 해는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잘 익어서 터지기 직전의 감 같구먼!’ 영선이는 감 생각에 낄낄 웃으며 입맛을 다신다. 그런데… 해를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다. 아침이나 낮에 봤던 해가 아니다. 너무 크다! 종이컵 바닥 크기 만했는데 컵라면 뚜껑 크기만큼 커졌다. 하지만 실제로 해의 크기는 언제나 같다.

아침, 점심때보다 일출 때의 해가 더 커 보이는 것은 왜 그럴까. 그 이유로 비교착시, 대기로 인한 굴절 등이 다양하게 제시돼 왔지만, 오늘날에는 ‘거리착시’가 해의 크기 변화를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원리라는 것이 정설이다. 거리착시는 착시의 종류 중 하나다. 인간의 뇌는 시신경으로부터 전달된 정보를 분석하는데, 물체의 크기를 관찰하는 지점에서 물체까지의 거리를 고려해 짐작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멀리 있는 물체일수록 겉보기 크기를 원래보다 큰 것으로 잘못 인식하게 되는데, 이를 거리착시라고 한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해 본 결과 사람들은 수평으로 보이는 지평선까지의 거리보다 수직으로 같은 거리에 있는 대기 중의 어느 점을 더 가깝게 느낀다는 점이 밝혀졌다. 따라서 지평선에 있는 해가 하늘에 떠 있는 해보다 더 멀리 있다고 느끼게 된다. 그런데 해는 항상 같은 크기이기 때문에, 결국 우리 뇌에서는 지평선에 있는 해가 더 클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는 2001년 초 미국 심리학자 로이드 카우프만과 물리학자인 아들 제임스 카우프만이 거리착시에 관해 모형 달을 만들어 수행한 재미있는 실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달 역시 해처럼 하늘에 떠 있는 달보다 지평선에서 뜨기 시작하는 달이 더 커 보이고, 이 이유 역시 거리착시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보이는 것’에 너무 약하다. 자신이 한 번 사물을 인식하는 알고리즘을 세우면 벗어나기 힘들다. 주관적인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인생을 사는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번 세워진 고정관념은 자칫 아주 중요한 순간에 ‘착시’를 일으켜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할 수 있다. 가끔은 좀 원초적이고 더디더라도 모든 선택을 정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마치 떠 있는 달과 뜨는 달을 사진으로 찍어 자로 직접 재보고, 둘의 크기가 같다는 것을 확인해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우리의 눈은 그렇게 썩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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