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호]

가을이다. 가만히 있어도 우울해질 것만 같은 계절, 괜히 우수에 찬 눈으로 만물을 응시해야 할 것만 같은 계절, 내 옆에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 한없이 외로워지는 계절이다. 아침저녁으로 갑작스레 차가워진 날씨에 눈물이라도 핑 돌 때면 괜스레 지나간 추억 생각에 마음이 짠하지는 않으신지. 봄과 여름을 너무 치열하게 달려와서 그런 걸까, 가을의 문턱에서 가쁜 숨을 고르며 ‘그땐 그랬지, 그때가 그립군!’이라며 추억을 곱씹고 있을 당신에게 나의 허접한 경험이 곁들어진 보잘 것 없는 이 글을 바친다.

추억은 매력적인 재산이자 활력소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현실을 비관하면서 혹은 회피하면서 추억에만 매몰되는 것은 그다지 유익해 보이지 않는다.

기자는 몇 년 전만해도 극심하게 염세주의에 함몰된 사람이었다. 세상사에 신물을 내면서도 이맘 때 같은 싱숭생숭한 가을 날씨가 들이닥치는 날이면 어쩔 줄 몰라 했다. 한 발 다가서면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야만 하는 대인관계, 당최 풀리지 않는 학점의 미스터리(?), 가슴이 먹먹해지는 미래, 부모님에 대한 죄송함… 이럴 때면 으레 학비 걱정 없고 먹고 살 걱정 없고 모두를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산책하며 맡았던 숲의 냄새와 술래잡기 때의 심장 박동이 생생해 가슴이 아렸다. ‘나의 꿈과 순수함은 어디로 사라지고 황폐한 나만 여기에 남아있나’라며 눈물을 훔쳤다. 그랬던 어느 날, 무작정 어렸을 적 살던 동네를 찾아가봤다. 아무 계획도 없었지만, 내가 가장 행복해서 가장 괴롭고 힘들 때마다 떠올린 그 추억의 한복판에 간다는 설렘은 굉장했다. 하지만 가보니 전혀 아니었다. 추억은 현실과 너무 달랐다. 내가 알아오던 추억은 어디서 왔는지 괴리감에 휩싸였다.

과거의 기억은 추억으로 미화되기 마련이다. 이는 기억의 망각과 관련된 현상이다.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을 기억하는 경우, 사건이 발생한 이후 시간이 흐르게 되면 자연히 새로운 정보들로 인해서 망각을 하게 된다. 즉, 관련된 정보의 정확성이 상실되는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은 정확성이 사라지게 되면서,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정도의 기억만이 남아있게 된다고 한다.

결론이 너무 늦게 나왔다. 결론은, 추억(追憶)은 아름답지만 남용하면 추악(追惡)이 된다는 것. 추억의 ‘억(憶)’은 생각하다는 뜻도 있지만 울적해지다, 우울해지다는 뜻도 있음을 명심하시길. 현실을 피해 과거의 허상을 좇는 동안, 또 다른 과거로 기억될 지금 이 순간이 의미 없이 날아가 버릴 수 있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생산적인 고민보다 단순히 우울만을 즐길 수도 있다. 이 가을은 그러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당신의 과거가 아름다웠다 하더라도 당신의 미래는 과거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기억하자. 사족이지만, 현실이 힘들 때 추억에 기대 위로를 받기보다 더욱 빛날 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된 순간, 내 인생은 많이 달라졌다. 믿는다, 당신의 미래는 과거보다 더욱 찬란히 빛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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