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해?”
“응... 은행 털어!”
“뭐 해?”
“응... 밤 세!”

가을 햇살이 등을 간질이고, 아침 바람에 가을 냄새가 묻어 불어올 때쯤이면 캠퍼스에서 들을 수 있는 대화이다. 짐작하겠지만, 손에 검정 봉지를 하나씩 들고 캠퍼스 곳곳을 누비는 아주머니, 아저씨 군단들. 비바람이라도 치면 그 다음날에는 어둠이 채 가시지도 않은 희뿌연 새벽안개 속의 캠퍼스 구석구석에 배치된 무리들을 보고 있자면, 그들의 재빠름과 부지런함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들 손에 들린 검정 봉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안에는 무엇이 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이런 무리를 캠퍼스에서 목격할 때면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마음이 편치가 않다. 혹시 내가 보기 이전이나 이후에라도 혹여 더 많은 밤톨과 은행알을 얻으려고 가지를 흔들지나 않았는지, 혹시 나무  밑동을 발로 차지는 않았는지, 무언가를 던져 가지를 맞추거나 부러뜨리지는 않았는지 하는 걱정에 나도 모르게 한 번 더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그들과 캠퍼스에서 마주칠 때마다 정말 묻고 싶다. 과연 밤나무와 은행나무의 알맹이를 빼가면서 나무에게 한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했는지. 말까지는 하지 않더라도 마음  속으로라도 고마움을 표했는지 묻고 싶다. 고마움의 표현이 쑥스럽다면, 뜨거운 뙤약볕에 나무들이 과실을 살찌울 때 오고가며 혹은 산책을 하며 한번이라도 나무를 쓰다듬어 주기라도 했는지 진정 물어보고 싶다. 봄이면 파릇파릇한 새싹을 틔워 ‘희망’을 알게 하고,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 아래 그늘을 만들어 ‘배려’를 알게 하고, 가을이면 자신의 과실을 아낌없이 떨어뜨려 주어 ‘베품’과 ‘나눔’을 알게 하는 고마운 나무들에게 한 번이라도 경의를 표한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비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져 풀숲에 내려앉은 그 알맹이 한 톨 한 톨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숲 속 어느 생명체의 식량이 될 수도 있고, 자연에서 난 것이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는 당연한 이치를 따라 다음해에 새 싹을 틔울 거름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아껴도 가난해진다는 말이 있다. 시장에서 몇 천원만 주면 한 봉지 가득 살 수 있는 밤과 은행을, 그것도 비양심적으로 나무를 해치면서까지 모조리 주워가는 행위는 분명 사라져야 할 것이다. 몇 천원, 아니 설령 몇 만원을 주고 사야 한다 하더라도 아무 노력이나 보답 없이 마구 밤톨과 은행알을 주워가는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것이다. 가을의 결실인 밤톨과 은행알이 숲 속 여기저기 흩어져 떨어져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풍경이 참으로 그리운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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