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우리대학의 환갑잔치가 열린 10월의 마지막 날, 학생회관 앞에는 길게 늘어선 여학우들의 행렬이 눈에 띄었다. “여학우에게는 무료로 티슈를 나눠드리니 가져가세요!” ‘공짜’라는 말에 눈이 번쩍 뜨인 기자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티슈를 받아들고 나니 짧은 생각 하나가 머리를 스쳤다. “이거 혹시 여학우들의 환심 사려는 거 아니야?”

이날 여학우들에게 나눠준 미용티슈는 총학생회가 올해 다 쓰지 못한 총여학생회 예산으로 마련한 것이란다. 이 예산은 다른 단과대에도 배분돼 생리대, 립글로스, 혹은 네일아트가 되어 여학우들에게 돌아갔다. 듣고 보니 여학우들의 관심을 끄는 것들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의 만족감만을 줄 뿐 앞으로 여학우들에게 생길 권리 차원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그동안 총학생회는 여자화장실에 에티켓벨 설치, 어두운 도서관 뒷길에 가로등 설치, 하이힐을 신은 여학우들을 위한 보도블록 보수 등의 공약을 실천해왔다. 여성학을 강의하는 이인숙 강사는 총학생회의 공약에 대해 “너무 주변적인 것들만 찾는 것 같다”며 “이런 문제는 총학생회가 아닌 시설팀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여학우를 생각하는 총학생회의 인식이 단편적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총여학생회 선거에 아무도 입후보하지 않은 사실은 학내 여성주의가 위기에 처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남은 예산을 총여학생회가 활발히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보태는 편이 바람직하지 않았을까? 각 단과대에 여성국 설치를 지원해주는 방안을 예로 들 수 있다. 이인숙 강사는 “학내 여성기구는 곧 여학우의 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통로”라고 강조한다. 다음해에는 반드시 여학우들의 관점을 대변할 총여학생회가 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학내에 “여자라서 행복해요!”라는 기분 좋은 목소리가 울려 퍼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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