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호]

국내 타이어 생산 1위 업체인 한국타이어에서 경악할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최근 1년 반 사이 작업장에서 근무하던 15명의 노동자가 숨진 것. 전문가들은 유해한 작업환경에 노출된 노동자들이 그 유해물질을 호흡하여 생긴 일이라고 추정하며, 한 회사의 같은 부서에서 여러 명이 동시에 걸린 질병은 공통적으로 노출된 업무적 요인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는 집단발병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기서 더 분개할만한 사실은 사측이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축소ㆍ은폐하려는 데에만 급급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간 노동자들을 각종 감시기구로 감시하고, 유해물질로 건강이 악화된 노동자의 산재승인을 방해해왔다. 그 결과 한국타이어의 산재신청건수는 동업체인 금호타이어 산재신청건수의 1/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사건이 터진 후에도 유가족을 회유하기 위해 사망자들의 가계도를 작성하고, 역학조사에 대비해 각 사업장에 솔벤트통 청소를 지시하는  등 노동자들의 사망원인을 왜곡하려 하고 있다.

14년 전인 1993년에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바로 한국 섬유산업의 심장으로 성장했지만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수많은 사망자를 낳은 원진레이온 공장이다. 사건이 발발하고 공장이 폐쇄되기까지 사망한 노동자는 15명, 공장 폐쇄 이후 투병생활을 하다 죽은 노동자의 수까지 합치면 총 97명에 이른다. 이는 이번 한국타이어 연쇄 사망사건의 규모가 이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하지만 한국타이어 사건은 그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공론화가 되지 못하고 있다. 삼성비자금 의혹, BBK 수사 등 다른 사회적 이슈와 관련된 뉴스들은 연일 쏟아져 나오고 주요언론에서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주목하고 있지만(물론 이 사안들 역시 두말할 것 없이 중요하다), 한국타이어 사건은 몇몇 언론사만이 간략한 관련기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분노해야 한다. 전근대적 작업환경과 사망한 노동자들의 인권은 아무리 생각해도 21세기 민주사회에 어울리는 산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원진레이온 사건이 있을 당시 우리사회는 노동자 인권에 대한 탄압에 분노하며 직업병에 대한 경각심을 확실히 심어주고자 일명 ‘산재ㆍ직업병추방투쟁’에 불을 붙였다. 또한 전 국민의 함성과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국가가 나서 대책을 세우기도 했었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목숨과 맞바꾼 타이어를 매일같이 발 대신 이용하고 있다. 안타깝게 숨진 노동자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방법은 그들의 죽음을 좌시하지 않고, 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측에 그 책임을 엄중히 묻는 것이다. 14년 전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간 부패한 자본을 또 다시 눈감아 주어서는 안 된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