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 소설부문

 

“어머니는 편히 떠나셨니?”
 나는 그때 그녀가 떠났을 때 느꼈던 분노를 다시금 생생하게 기억해냈다.
“당신이 그걸 물을 자격은 없습니다.”
“팥쥐야.”
“다시는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게 좋을 거에요.”
 언니는 어머니의 안부를 물을 자격이 없었다. 그녀의 무책임함과 경솔한 결정은 나약하신 어머니를 결정적으로 힘들게 했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떠난 뒤 어머니는 급속하게 쇠약해지시다가 이내 자리에 눕게 되셨다. 고왔던 얼굴도 병색이 완연해지시고 팔, 다리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셨다. 가장이 지녀야할 부담감은 둘째 치고 언니가 그렇게 쉽게 휙 떠난 것이 어머니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셨던 것 같다. 사실 어머니가 언니와 내적으로 대립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가 그녀를 죽일 듯이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언니가 어머니의 심술에 당혹해하고 이를 포기했으면 여느 집처럼 평범한 모녀 관계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언니는 그런 어머니의 심리 상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물지 않은 반항심과 특유의 밝은 매력으로 오히려 어머니의 자존심을 도발하여 둘은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치달은 것이다. 하지만 비록 얄미운 양딸이라고 해도 딸은 딸이었다. 언니가 그렇게 쉽게 휙 집을 떠나니 겉으로는 강한 척 해도 마음은 여리디 여린 어머니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가 된 것이다. 그 후회는 점차 마음속에 작은 상처를 남기다가 이내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놓은 것 같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부터 이미 큰 상처를 입으신 어머니였다. 겨우 겨우 막아놓은 상처가 다시 터지니 이번에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무너져버린 것이다.
  마음이 약해지시니 금세 몸도 쇠약해지시고 온갖 병이 몸에 들으셨다. 세상에서 그나마 유일하게 내게 온정과 사랑을 주신 분이였다. 그런 어머니의 병든 모습을 보며 간호하고 있으니 눈에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웃지 못했던 내가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 오죽하면 아버지의 죽음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무리 그런 나라도 내 어머니가 죽어가는 모습은 참기 힘든 것이었다. 웃음도 눈물도 상대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나오는 것이다. 나에겐 어머니만이 유일하게 애정을 주고받은 사람이었다. 그렇게 어머니는 내 눈물이 섞인 약을 드시며 2년간 앓으시다가 이내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나는 어머니가 내 머리를 빗어주시던 빗을 품안에 안고 하루 종일 오열했다. 평생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살다가 돌아가신 내 어머니의 애처로움에 나는 가장 아름다웠던 어머니의 모습을 추억하며 그렇게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마쳤을 때 가문은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미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었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내가 가장이 되었다. 사실 나는 이 집안에 대해 그 어떤 미련도 남지 않았었다. 그런 내게 가장으로서의 짐을 맡게 한 결정적인 이유는 어머니가 죽기 전까지 지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집이었다는 사실이다. 비록 언니라는 커다란 빛 때문에 어머니의 인망이 낮춰져 평가되긴 했지만 어머니는 여자의 몸으로서는 꽤나 집안을 잘 꾸려가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의 노력을 기억하자 도저히 이 가문을 나 몰라라 할 수 없었다. 집을 떠난 노복들과 사람들을 다시 부르고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묻고 싸워가며 가세를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나 역시도 어머니를 위해 집안일을 도왔어야 했었다. 그 과정에서 꽤나 많은 실무를 맡아서 해야 했다. 사람들과 사이가 좋은 언니는 주로 바깥일을 맡아서 했지만 나는 어머니를 도와 서류 정리와 같은 내부적인 일을 맡아야 했다. 사실 집안일을 도우는 것은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고 서류를 보며 일을 처리하는 것이 의외로 내 적성에 맞았던 것이다. 나에겐 글자를 읽으며 서류를 보는 것이 꽤나 익숙했었다. 아직 어린 여자아이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재주를 가진 셈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생각보다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문이 등장하면서 여자들도 조금씩 책을 읽게 된 세상이지만 아직까지도 여자가 공부하는 것은 그리 탐탁찮게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내 어머니는 여자임에도 상당한 고등교육을 받은 분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따라서 나도 글을 읽는 법을 배웠으며 친구가 없었던 어린 시절에는 책을 벗 삼아 지내곤 했다. 어머니가 준비해 주었던 책을 모두 다 읽었을 때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 놓여 있는 책들을 탐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벼슬길에는 오르지는 않으셨지만 글 읽기를 즐겨하셨고 인문학적, 예술적 소양이 풍부하신 분이었다. 때문에 서재에 무척 다양한 분야의 서책들을 가지고 계셨고 나는 이를 읽기 위해 처음으로 아버지께 부탁을 드려보았다. 나는 언니처럼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기분 좋은 노래를 읊조릴 줄도 몰랐고, 아버지의 어깨와 다리를 주물러 드릴 만큼 애교 있지도 않았다. 그런 내가 갑자기 서재에 있는 책을 읽게 해달라고 부탁을 드렸을 때 아버지는 한 참 동안이나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서는 ‘뜻대로 하거라.’ 이 한마디 말씀만을 조용히 남기셨었다. 아마도 애정을 쏟을 수 없는 자신의 작은 딸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를 아버지는 해주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을 가져와 읽고는 다시 갖다 놓았다. 책의 분야와 주제, 사상은 무척이나 다양했다. 덕분에 난 꽤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을 이때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쌓아 놓았던 지식들이 집안을 다시 꾸릴 때 도움이 될 것이라고는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어머니의 일을 도우면서 가문을 꾸려나갈 때 내가 느낀 것은 어머니께서 지나치게 정직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거짓이라는 것을 모르셨다. 모든 일을 항상 공정하게 처리하시려고 했고, 가문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에는 결코 손대시는 법이 없었다. 때문에 가세가 기울지는 않았어도 다시 오르지도 못했다. 하지만 여자 가주가 가문을 꾸려나가기가 쉬울 리 없었다. 나는 어머니의 바로 곁에서 이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는 그림자 특유의 어두운 감각으로 그 당시에 가문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몇 가지 요소를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어머니께 조심스레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드렸지만 어머니는 차마 그 일에 손을 대지 못하셨다. 비록 언니와 원치 않은 대립관계를 가지셨던 어머니였지만 한 평생을 너무도 곧고 정직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가문에 소속된 얼마 남지 않은 땅에서 나오는 소작료를 받으며 가문을 이끌어 가셨다. 하지만 이젠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바로 가주 인 것이다.
  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사업들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양반이라는 이름과 체면을 버리고 쓸데없이 돈이 들어가는 구석을 모두 막았다. 철저하게 기능적으로 움직여 가문의 영향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가문이 소유한 땅 중에서 제대로 운영이 되지 않는 것은 팔아버리고 대신 이를 이용하여 한창 활성화 되고 있는 시장에 투자를 했다. 가문의 땅을 팔아 천한 장사꾼처럼 상업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가문의 어르신들이 보신다면 까무러칠 일이지만 어차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던 가문이었기 때문에 마지막 발악을 해본다는 기분으로 내 뜻대로 일을 처리했다. 거친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해서는 안 될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의 그림자를 물려받은 딸이었다. 내 이름은 팥쥐, 그림자에게는 그림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자 집안에 내 일을 도와줄 사람이 많아졌다. 그때서야 난 조금 여유를 가지고 가문의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때부터인가 나에게 매파들이 자주 찾아오는 것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매파들이 나를 보고 서찰을 들고 와서 어느 가문의 무슨 도련님이라고 과장해서 전달하는 모습은 퍽이나 우스웠다. 더 우스운 것은 매파가 전달한 서찰의 내용들이다. 하나 같이 상대편 남자들은 ‘운명’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했다.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 해보지 않았으면서 운명이라는 말을 쉽게 사용하는 것이 무척이나 가당치 않아 보였다. 또 어떤 서찰에는 내 용모에 대한 아름다움을 칭찬하는 찬사가 가득했다. 아마 바깥에서 시장을 시찰하고 거래를 할 때 나를 한 번 본 듯 했다. 하지만 단 한번 보고서 내 외모만을 온갖 미사여구를 이용해 칭찬하는 사람 역시 가벼워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어렸을 적에는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이런 관심을 받아 본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항상 사랑받는 존재는 언니였고 나는 그녀에게 가린 그림자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문을 일으키기 위해 분주하게 뛰는 과정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지니고 있던 그늘들을 조금씩 벗고 있었던 것 같다. 여전히 미소 짓는 것은 어색하지만 적어도 상대방을 대할 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는 지난 몇 년 동안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내가 평소에 가지던 고민과 열등감을 조금이나마 벗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기뻤다. 비록 언니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것은 아닐지라도, 누군가가 나라는 존재를 인정해주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나를 꽉 붙잡고 있는 과거의 그늘을 조금씩 떨쳐 버릴 수 있었다. 가장 그림자답게 움직였기 때문에 오히려 과거의 그림자를 벗어버릴 수 있었다는 역설이 상당히 우스웠다. 나는 그렇게 천천히 변해가고 있었다. 가문이 안정되고 내가 20살이 넘어 집안사람들 모두가 내 혼처에 모든 신경을 기울이고 있을 때쯤 뜻밖의 사람이 찾아왔다. 바로 집을 떠났던 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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