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 사람을 죽이고 왔어."

10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언니가 나에게 웃으며 처음 한 말이었다. 창살의 격자 사이로 맑은 햇살이 들어오고 청명한 바람이 불어오는 어느 가을 낮이었다. 처마에 달아 놓은 풍경이 스치는 바람에 흔들려 맑은 소리를 내었다. 나와 언니는 그렇게 사랑채에서 담담하고 조용히 차를 마셨다. 차를 마시던 언니가 문득 나에게 말을 했다.

"예쁘다. 꼭 네 어머니를 보는 것 같아."

내 어머니는 생전에 참 아름다운 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즉 내가 6살이었을 때 어머니께서는 항상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세안을 하신 뒤 곱게 화장을 하고, 청초하며 색감이 부드러운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으셨다. 그렇게 자신의 단장이 끝나시면 나에게로 다가오셔서 내 긴 머리를 다정하게 빗어주시고 머리를 곱게 땋아주셨다. 그 당시 나는 어렸지만 나의 어머니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었고 나 역시 어머니를 닮아 다른 사람보다는 내가 예쁜 용모를 가졌다는 것을 일찍 알았었다.

▲ © 이현자 기자

하지만 어머니께서 그렇게 스스로를 단장하시고 꾸미는데 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를 보아주기 원했던 사람은 항상 어머니께 냉담하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고왔던 어머니를 제대로 보아주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어머니 앞에서 밝게 웃으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집안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아 교양 있으신 분이었다. 때문에 한 번도 어머니에게 함부로 대하신 적이 없었고 항상 부드러운 말씨를 사용하셨지만 이는 어머니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어린 나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사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 아니었다. 어머니가 이 집으로 시집을 오기 전, 아버지는 본래 결혼 하셨던 분과 사별하셨다. 그렇게 첫 번째 부인을 그리워하시다가 이를 안타깝게 여기신 집안 어른의 소개로 어머니를 만나 재혼을 하셨다고 들었다. 아버지는 재혼을 탐탁찮게 생각하셨지만 집안 어른들의 암묵적인 압박을 이기지 못하시고 어머니와 혼인을 치르신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에 내가 태어나게 됐다.

내가 세상에 태어난 뒤에도 아버지는 여전히 어머니께 무관심했다. 아니, 애초부터 아버지의 관심은 어머니와 나에게 존재하지 조차 않았던 것 같다. 아버지의 마음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첫 번째 부인은 나와 어머니가 아버지의 마음속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그 여자의 그림자를 안고서 감정 없는 낯으로 어머니와 나를 대했다. 그 당시의 나는 어렸지만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느껴지는 그 미묘하고 비틀린 감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결코 어머니를 자신의 부인으로 대한 적이 없었으며 나를 자신의 딸처럼 대한 적이 었었다. 결국 아버지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더 받기 위해 스스로를 꾸미는 어머니의 노력은 항상 소용없는 일로 끝나기 마련이었다.

"내가 그 사람 죽일 때 나 무슨 생각 했는 줄 아니?"

나는 담담히 차를 마셨다.

"이거 꿈인가요? 이거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이에요?"

나는 담담히 내 잔에 차를 부었다.

"매일 매일 꿈을 꿨어. 항상 그 사람 죽이는 꿈을 말이야. 내가 배게로 그 사람 얼굴을 푹 눌러서 발버둥 치는 것는 것도 모른 척 하고 끝까지 온 몸이 축 늘어질 때까지 누르고, 또 누르는 꿈 말이야. 계속 그런 꿈을 꾸다 보니까 언젠가 부터는 어디가 꿈이고 어디가 현실인지 모르겠어서 혼란스러웠어. 그리고 결국 정신을 차려보니까 어느 날 아침엔가 그 사람 내 배게 밑에 깔려 있었어."

나는 담담히 차를 마셨다.

"막상 일어나니까 아무것도 아니었어. 죽으니까 정말 너무 약했어. 움직이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해. 너무나도 약했어."

주전자에 더 이상 차가 없었다.

"꼭 우리 아버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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