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대학교를 가지 않는다는 것은 이제 매우 예외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까 대학교는 으레 다 가는 것이고, 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은 없다. 부모가 등록금을 대줄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아니라면? 친절하게도 정부에서는 6%로라는 낮은!! 이자로 학자금 대출을 해 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나마 대학이나 다닐 수 있는 것이다. 여하튼  이 시대의 대학생들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입하기도 전에 빚쟁이가 된다. 자, 이제 졸업 후에 남아있는 일은? 물론, 그 학자금 대출을 갚아나가는 일이다. 길면 한 10년쯤 걸릴 수도 있다. 다들 그러고 사니까 그걸로 위안을 삼는다. 그것이 정신건강에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비정규직이라는 불안한 노동조건과 임금에서 매년 계약을 갱신해 가면서 삶을 유지해나가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에게 참으로 현실을 노곤하고 피곤할 것이다. 그리고 그 암담한 미래라는 것이 졸업 전부터 애써 상상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그려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그래서 어떤 선배하나는 나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예전에는 노력하고, 찾으면 뭐라도 될 수 있을 거야” 라고 이야기 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그렇게 얘기하면 내가 부끄러울 것 같다.” 참 피곤한 세상이다.

이렇게 때문에 나는 부모에게 무한한 죄책감과 함께 한편으로는 감사함을 느낀다. 적어도 그들은 나에게 빚을 물려주지는 않았고, 부양의 의무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들은 큰 이변이 없는 한 나 없이도 잘 살 것이다. 감사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나마 돈 덩어리 학교를 다니면서도 그럭저럭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감사함마저 가질 수 없는 나의 많은 친구들은 어째야하나, 지금도 내 친구들은 부모가 물려준 빚을 갚고, 부모의 부양문제로 하고 싶은 일을 단념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래서 우리 ‘88만원 세대’는 잘 살 수 있을까?

불안하고, 어눌하고, 어색한 말일지라도, 우리는 이렇게 존재하고 있다고, 그리고 정말 힘들어 죽겠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고, 불안하지만, 그게 그냥 그런 것 같지는 않은 것 같다고, 뭔가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말이다. 말하자면 아프면 아프다고 소리라도 질러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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